“Where are you from?”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이름을 물어 본 다음, 꼭 이 질문을 나에게 던진다. 노란 머리, 파란 눈을 한 이들 사이에 섞여 있는 내가 어디 사람인지 궁금해서라고 생각한다. 내가 교환학생으로 와 있는 애리조나 대학 (University of Arizona)은 멕시코 국경과 인접한 투산에 위치해 있어서 외국인 비율이 높지만, 대부분 멕시칸들이기 때문에 동양 여자라는 그 자체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외국에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처럼, 친구들에게 부채와 같은 한국 기념품을 선물했을 때 터져 나오는 탄성에 뿌듯해하기도 했다. 그래 “I’m from Korea.”라고. 지금은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지 3달 째, 영어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고, 말을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사실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 기사가 사진과 함께 학교 신문에 실리고, 초콜릿 폰 전면광고가 실렸을 때 자부심을 느꼈다. 반면 요즘에는 계속 된 북한 핵 문제로 인해 친구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며칠 전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에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총대를 맨 듯한 한 백인 남자아이가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너 한국에서 왔다고 그랬지? 남한? 북한?” 내가 당연하다는 듯, “남한에서 왔지”라고 하니 다행스럽다는 표정과 함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다. 뒤이어 다른 질문이 날아왔다. 북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광범위하고도 추상적인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내 생각을 섣불리 말해도 안 될 것 같고, 그렇다고 내가 대한민국 사람들의 의견을 모을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망설이는 사이 또 다른 질문. “너 도대체 그 위험한 곳에서 몇 년이나 산 거야?” 나 대신 대답해 주는 한 친구, “얘는 교환학생이라서 계속 한국에서 살았어. 1년 뒤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 가야 해.” 나를 보는 친구들의 표정은 불쌍해서 어쩌니라고 말하는 듯 했다.

다음 날에는 신문 기사에 있는 사진 속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플랜카드에 뭐라고 쓰여져 있는 지 해석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사진은 라이스 방한을 앞두고 반대 시위를 하는 무리의 사진이었다. 플랜카드에 적혀있는 말, “죽음의 사신 라이스 방한을 규탄한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라는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는 것도 힘들뿐더러 어디까지 배경설명을 해줘야 하는지 쉽사리 판단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한 날, 교수님이 “오늘은 Korea(대부분 South와 North의 구분은 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울한 날이군요.”라며 수업의 운을 떼는 이 곳은 바로 미국이다. 삼성 핸드폰이 좋은 지는 다 알지만, 삼성이 한국 것인지 아는 사람은 몇 안 된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나는 한국 사람인 것을. 미식축구 경기를 보러 갈 때면, 이 학교의 상징인 빨간 티를 입고 간다. 운동장에 빼곡히 들어차 있는 붉은 물결을 볼 때면 붉은 악마가 생각나고, ‘짝짝짝 짝짝 애∼리조나’라는 구호보다 ‘짝짝짝 짝짝 대∼한민국’이라고 외쳐야만 속이 시원할 것 같다. 한국에 있을 때는 그저 그런 사람 중 하나였는데, 이제 난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으로 이곳에 왔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이라는 책임감이 든다. 한 학기가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한국에 대한 편견은 없애주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듯 하다.

교환학생 언론정보학과 03학번 이호현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