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계열의 명문, 북경대학교를 찾았다. 학교 전체가 유적지라는 가이드의 말처럼, 낡은 건물들이 범상치 않다. 눈으로 그 크기를 가늠하기조차 힘들만큼 큰 이 캠퍼스에 70여명의 학생들이 한국어 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다.

“요즘은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를 재밌게 보고 있어요” 한국어과에 재학 중인 왕영 씨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본다. 고등학교 때는 그룹 HOT의 노래를 즐겨들었고, 따분할 땐 ‘X맨’을 보며 웃는다. 친한 친구 이야기처럼 익숙하다. 한류(韓流)열풍 때문만은 아니다. 이렇게 보고 듣는 것은 전공공부와도 직결된다.

왜 한국어를 공부하느냐고 물었더니 그의 답은 명문대 생답게 진지하다. “한국과 중국은 가까운 나라예요. 같은 유교문화권이기 때문에 비슷한 부분도 많고요. 그렇기 때문에 소통이 손쉬워요. 한국을 공부하는 것은 배운다기보다 이해한다고 표현하고 싶어요.”

한국어가 어렵다는 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주 나오는 이야기다. 왕영 씨에게도 한국어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문법이 어려워요.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아직도 ‘은’,‘는’,‘이’,‘갗가 언제 사용되는지, 어디서 사용하면 안 되는지 헷갈려요.” 이 때문에 유창한 한국어에도 가끔 빈틈은 있다. 그는 ‘나 ~해요’ 식의 ‘는’ 같은 조사가 빠진 구문을 자주 구사한다.

이런 그가 제일 좋아하는 한국문학작품은 바로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다. “외울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좋아해요. 단어가 어려워서 사전을 찾아 이해했어요. 무거운 마음으로 그 시를 읽었지요.” 한용운 뿐 아니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윤동주의 별 헤는 밤 등 대는 족족 ‘아 그거 알아요!’라고 대답할 정도로 그는 꽤 많은 한국 문학 작품을 알고 있다. 덧붙여 “지금 교과서의 작자는 조동일이예요.”라고 귀띔한다.

현재 왕영 씨는 한국어를 배우기도 하지만 가르치기도 한다. 북경대 한국어과에서 만든 ‘주한교류협회’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봉사를 하고 있는 것. 이 조직은 한국학생들과 함께 매주 400~500명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동북아시아 교류가 많아졌잖아요? 일반인 사이에 한국영화나 드라마 많이 들어왔어요. 인기가 많아서 한국어 배우려는 사람들 많아요.” 그의 말처럼 실제로 북경대 한국어과에 지망하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중문과면 중국으로 불문과면 프랑스로 교환학생을 가듯, 왕영 씨도 지난해 경희대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 문화 적응 못하는 거 없어요. 매운 음식도 잘 먹고요. 못해본 것이 있다면 한국에서 술 문화를 체험하지 못한 것 정도요?” 한국 학생하면 술 문화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는 그는 한국 친구들이 술집에 들어가는 것만 보았다. 그렇지만 빈도가 높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그 문화가 얼마나 커다란지 알았다고.

이 때 이화에도 들렀다. 연세대에서 열린 한국어 말하기 대회에 참가했는데 이화를 통해 갔다. “9월의 비오는 어느 날이었어요. 시간이 급해 전부 구경하지는 못했지만 캠퍼스가 너무 예뻤어요. 학생들은 더 예쁘고요.”

“한국 학생들은 활발해요. 다른 나라 학생들보다 동아리나 모임이 많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요. 이런 거 참여하려면 안하는 학생보다 공부는 덜하게 되잖아요. 그렇지만 한국 학생들은 똑똑하고, 잘 이해하니 괜찮아요.” 그가 생각하는 한국 학생의 이미지는 이렇다. 이 이야기를 반영하듯 한국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도 한 모임의 활동이다. “중증 장애인에게 봉사했어요. 목욕시켜주고 밥 먹여주고, 옷 입혀주고요. 그런 봉사활동도 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에서 처음 알았어요.”

이렇게 한국에 관심이 많은 왕영 씨가 생각하는 역사문제는 어떨까. 그는 동북공정 때문에 한반도가 종종 시끄러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기는 정치적으로 동북공정을 생각하지 않아요. 아주 학술적인 문제거든요. 서로 싸우지 말고, 중국은 중국의 역사로, 한국은 한국의 역사로 생각하면 어떨까요. 아니면 동북아시아의 역사라고 생각하거나요.” 조심스러운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까칠하지 않았다. 덧붙여 그는 “사실 대학에 올 때까지 고구려라는 나라가 있었는지조차 몰랐어요. 교과서에 실렸는지 기억도 나지 않아요.” 생각만큼 중국 대학생이 이 문제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거나 공격적이지 않다는 점이 놀랍다.

왕영 씨는 졸업 후 북경대 대학원 한국어과에 진학할 예정이다. 그의 꿈은 북경대학교 한국어과 교수다. 특이한 것이 있다면, 북경대 한국어과 교수는 석사까지는 한국어를 전공하고 박사 때는 다른 전공을 이수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박사 때 전공할 학문에 대해서 왕영 씨는 아직 생각하는 중이다.

왕영 씨는 한국을 ‘활력 가득한 호랑이’라고 표현했다. ‘활기찬 호랑이’가 더 자연스럽다고 너스레를 떨자 그는 바로 따라 말한다. “활기찬 호랑이!” 그가 설명한 한국이 정말이지 잘 드러난 문구다. 함께 찍은 사진에 누가 중국인이고 누가 한국인인지 구별하지 못할 만큼 비슷한 왕영 씨. 이처럼 그는 한국어과 교수를 꿈꾸는 대학생으로서 학문적으로든 외모로든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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