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실에서 온 편지, 송영빈(일본어학 전공 교수)

얼마 전에 사랑니를 뺐다. 사랑니 옆의 잇몸이 부어올랐지만 병원에 가기 싫은 마음에 곧 낫겠지 하고 놔두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자 결국 치과에 가게 되었다. 의사는 진찰하더니 이를 빼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 순간, 잇몸에 따끔따끔한 마취 주사를 맞는 것도 마음에 걸렸지만, 그보다 ‘우지직 우지직’ 하고 이 뽑히는 소리를 상상하니 옛날 고등학교 때 보았던 더스틴 호프만 주연의 ‘마라톤맨’이란 영화가 기억났다. 그 영화의 주인공이 옛 나치 고문기술자에게 이를 뽑히는 장면이 생생히 떠오른 것이다.
치과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문득 사랑니는 왜 ‘사랑니’라고 부르는 걸까 하고 의문이 생겼다. 의사에게 물으니 다른 이는 모두 아동기에 영구치가 나지만 사랑니만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나기 때문에 ‘사랑을 아는 시기에 나는 이’라는 의미에서 그렇게 부르게 된 것 같다며 치과 용어로는 ‘지캄라고 부른다고 알려주었다. ‘지캄라...... 분명 한자어인 것 같은데, 늦게 나는 이라고 해서 더디다, 늦다는 뜻의 ‘遲’에 이 ‘齒’를 쓴 것일까, 아니면 사랑니는 잇몸 속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땅 ‘地’에 이 ‘齒’를 쓴 것일까. 더 이상 그럴 듯한 한자가 떠오르지 않아 ‘지캄는 어떤 한자를 쓰느냐고 의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서양에서는 사랑니를 뭔가를 알게 되는 나이에 나는 이라고 해서 ‘wisdom tooth’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지혜로울 ‘智’에 이 ‘齒’를 써서 번역한 것 같다는 것이었다. 참 어려운 말을 쓴다고 대꾸했더니, 치과 전문용어는 모두 일본 의학용어를 가져다 쓰고 있다는 대답이었다.
일본에서는 1600년대, 그러니까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짧았던 시절, 성인이 되어 부모가 돌아가신 후에 나는 이라고 해서 사랑니를 ‘오야시라즈(親知らず:부모를 모르는 놈)’라고 불렀다. 그러다가 18세기에는 성년이 되어 나는 이라고 해서 성치(成齒)로 쓰다가, 19세기 영어 용어의 영향을 받은 후부터는 ‘智齒’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 ‘智齒’라는 일본 용어는 ‘사랑니’라는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의학계에 정착해 통용되고 있다. 물론 ‘사랑니’가 언제부터 쓰였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조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사랑’이나 ‘이’가 《능엄경언해》(1462)나 《훈민정음 해례본》(1446)에 나오는 것을 보면 이미 15세기에는 쓰였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서는 아직까지도 ‘지캄를 고집하고 있다. 어디에서 어떻게 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얼마 전 내가 참여하고 있는 의학용어 실무위원회에서 어떤 위원이 ‘사기질’이라는 용어를 기존에 쓰던 ‘법랑질’로, ‘이틀’을 ‘치조’로, ‘잇몸’을 ‘치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우리말에서 ‘법랑’이란 말은 다른 말에도 흔히 쓰이고 있는 것이 아니고 한정된 범위인 ‘법랑냄비’라는 단어에서만 쓰고 있는데, ‘사기질’을 ‘법랑질’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또한 모든 사람이 쉽게 아는 ‘이틀’, ‘잇몸’을 굳이 어려운 말인 ‘치조’, ‘치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해서, 다시 의사에게 물었다. 사랑니라는 알기 쉬운 말을 두고 ‘지캄라고 쓰듯 그렇게 꼭 어려운 말을 써야 하느냐고. 그랬더니 의사는 내가 흥미를 끄는 별난 환자라고 생각했는지 마침 시간도 있고 하니 왜 쉬운 우리말을 써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것이었다.
의사에게 ‘심상성좌창(acne vulgaris)’이라고 들어 본 적이 있느냐고 했더니 모른다고 하길래 ‘보통여드름’을 그렇게 부르고 있다고 말해 주었다. 일각에서는 쉬운 말을 두고도 굳이 ‘尋常性?瘡’이라고 해야 의학 전문용어로써의 권위가 선다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이 한자어는 너무 어려워 우리 국어를 대표하는 연구 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좌창’을 꺾을 ‘挫’에다 혼이 나다의 ‘創’으로 잘못 표기하고 있을 정도이다.
또한 의사들 중에는, 최근 중국어가 뜨고 있고 한국 의사들이 중국에서 진료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한자어로 된 전문용어를 없애고 쉬운 우리말을 쓰자는 것은 세계화 시대에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방금 예로 든 ‘치조’란 용어는 중국에서는 ‘아조(牙槽)’라고 표기하고 발음은 ‘ya cao’(a두개에 다시표시)이라고 한다. 이렇듯 서로 사용하는 한자가 다르고 발음은 더더욱 다르므로 환자와 필담으로도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한자용어를 써야 중국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는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의사의 물음에 마무리도 할 겸 “우리 학생들이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사회의 중심에 섰을 때, 모든 전문용어가 들으면 바로 알 수 있는 쉬운 말로 바뀌는 것, 이게 제 꿈입니다.” 하고 덧붙였다. 내 말이 끝나자 의사는 “참 좋은 일을 하시는군요. 역시 ‘지캄보다는 ‘사랑니’가 훨씬 알기 쉽지요.” 라며 속 시원한 한 마디를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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