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그동안 남들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하다가 인문학의 고립과 위기를 자초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쉬운 이야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중국의 본토를 잃고 국부군이 대만으로 진입했을 때 군인들은 수도에서 물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수도꼭지를 사다가 벽에 박고 틀었지요. 물이 나올 리 없습니다. 군인들은 속여 팔았다며 상인들에게 총질을 합니다.
오늘날 인문학 담론을 펼치게 된 것은 수돗물은 수도꼭지가 아니라 땅속의 수도관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밝혀주기 위함입니다.
인문학이란 사회(Society)·기술(Technology)·경제(Economy)·정치(Politics) ‘STEP’ 분야의 수원지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수원지가 마르거나 수도관이 녹슬면 문명의 발판인 ‘스텝’은 중세와 같은 페스트(PEST)로 변하게 됩니다. 똑같은 글자라도 우선순위가 바뀌면 STEP에서 PEST로 변하 듯, 인문학의 우선순위가 바뀌면 나라 전체가 역병에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될 것입니다.

변하는 세계대학
지금 세계의 대학들은 시대의 변화와 함께 무서운 속도로 변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영대학은 MBA 출신들을 더 이상 우대하려 하지 않는 기업풍토의 영향으로 지원자들이 30퍼센트나 감소되는 위기를 겪었습니다. 그 결과 경영대학들은 수도꼭지에서 수원지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의료사고가 교통사고 건수를 웃도는 증가세를 보이자 의과 대학에서는 “차트가 아니라 환자의 얼굴을 보라”고 교육합니다.
일본은 전국의 인문학 연구소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통합하고 관료의 온상이라 불리던 동경대학은 교육 서비스 분야에서 모두 A를 받으며 새 대학으로 거듭났습니다.


변화의 원천에 인문학이 있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을 찾아가면 인문학이라는 수원지에 도달하게 됩니다. 인문학은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 지를 밝히고 깨닫게 하는 학문입니다. 인문학은 단순히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인 실용적인 도구 학문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나 우리처럼 문과와 이과의 구렁이 이렇게 깊고 넓게 파져 있는 나라도 드물 것입니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한 것은 서로를 끌어당기는 사랑의 친화력, 즉 인문학적 화두에서 힌트를 얻은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인문학에 대한 무지를 키운 것은 바로 인문학 당사일 수도 있습니다.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의 서문에서 비꼰 것처럼 공허한 글에 참고문헌과 주석만 나열하면 권위 있는 논문이 되는 줄 아는 사람들이 인문학자 행세를 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혼도 가슴도 없는 인문학은 결국 상상력과 창조력을 사회에 공급할 힘을 잃게 되고 그 결과로 경상계 학생들은 8·90퍼센트의 취직을 하는데 인문계 출신들은 그 반에도 이르지 못한다는 자탄에 빠지게 됩니다.
인문학의 힘은 시스템을 중시하는 다른 학문과 달리 기계가 할 수 없는 ‘공감’의 능력을 길러주는 데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관용과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애학의 힘이요, 인간의 문명을 움직이는 힘입니다.


상품가치와 생명가치
시장경제 원리가 인문학을 해친다는 말도 들립니다. 나는 대학교육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해야하고 시장원리에 충실해야 된다는 대해서는 동의를 합니다. 그러나 늑대가 이 지구에서 멸종 된 것은 인간의 편견이 작용한 탓이라고 봅니다. 이솝우화에서 늑대는 항상 교활하고 흉포한 악역노릇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인문대학 출신을 기피하는 기업갇인문학을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학생들은 현실을 깊이 보지 않고 이솝우화의 편견 속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 생각됩니다.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은 많지만 영문학을 하려는 사람은 드물고 프랑스 말을 배워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있지만 불문학이나 그 역사를 전공하려는 학생은 드물다면 그것은 꽃만 꺾어 화병에 꽂는 것과 같다고 할 것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값지고 뜻있는 담론이 이제부터 열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수원지의 물이 오염되지 않았나부터 따져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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