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은 도화지다. 거리는 전시장이다. 전시시간은 365일. 셀 수 없이 많은 관객 수를 보유한 이 전시장들을 만든 것은 바로 담이랑 회원들이다.

담이랑은 ‘담장에 전하는 이화인의 사랑’의 줄임말로 담장에 그림을 그려주는 봉사 동아리다. 활성화된 동아리 중심에는 김효은 담이랑 회장이 있다. “우리 함께 만들어가요∼ 아름다운 세상. 이 노래 나오면서 담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가 있었죠? 해보고 싶었어요. 제 전공과도 잘 맞고요” 호기심에 시작한 담이랑은 이제 그의 대학생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한 담장을 그리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정이 없다. 5월에 다녀온 인천 융신모자원은 힘든 기억이 뚜렷한 곳. 조소과 한 선배와 효은씨는 새벽까지 작업을 했다. 예상에도 없던 외박을 하고 다음날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림 그리는 내내 비가 와서 더욱 고된 작업이었다.

그렇지만 융신모자원은 가장 보람 있던 곳이기도 하다. 융신모자원은 한부모 가정 아이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아이들이 모자원을 싫어했대요. 주변에서도 여기 사는 애랑은 놀지 말라고 하고. 도착해보니 건물이 잿빛이라 정말 우울한 거예요” 그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곰돌이 푸를 그려 넣었다. 공주님 왕자님이 되라고 성도 그렸다. 완성된 벽화는 아이들의 마음을 바꿔놓았다. 그 후 모자원은 주민들이 모여 파티를 여는 아름다운 곳이 됐다. 지금도 아이들은 ‘부산 아줌마 잘지내요?’라며 효은씨의 안부를 묻는단다.

담이 높을 때는 사다리를 타고 그림을 그렸다. “사다리가 떨리면 심장이 콩알만해져요. 밑에서는 죽지않아 죽지않아∼ 노래를 부르고 있고요. 얼굴은 웃고 있지만 조금의 방심도 허용되지 않죠” 아래에서는 색을 만들고, 위에서는 칠하고. 뜨거운 여름 햇살에 그들은 끊임없이 땀을 흘렸다. 햇빛을 받은 뒷목만 까매졌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들의 모습은 페인트 투성이다. 머리카락에도 손에도 페인트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월요일에 만나면 손에 묻은 페인트가 그대로예요. 2~3일씩 때수건으로 벗겨내고 해야 살색이 나와요” 매번 오랜 작업으로 몸이 굳고 저린다. 작업 다음 날 학교 수업은 엉망이 된다. 이 정도 되면 돈 버는 일도 아니고 그만둘 법도 한데 그들은 꿋꿋하다. 한 번 작업 할 때마다 꾸준히 15~20명씩 모이는 것은 이를 증명한다. “제일 좋은 것은 바로 동아리 회원들이예요. 다들 ‘담이랑∼담이랑∼’ 노래를 하죠”라고 말하는 효은씨 얼굴엔 또 다시 순수한 미소가 번진다.

작업이 끝나면 누군가가 어김없이 ‘회장님 한 말씀!’이라고 외친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속에서 그는 “회색 벽을 밝게 만드는 게 우리 손에 달려있다”라는 말로 끝을 장식한다. 회색 벽에 생명을 주고 싶은 이화인, 전공은 상관없다. 담이랑의 문을 두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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