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저씨, 가방 좀 10분만 맡아주세요”

생활관 경비를 맡고 있는 홍성하씨를 인터뷰하는 1시간 동안 수많은 학생들이 경비실을 오고 갔다. 인터뷰하랴 학생들 부탁 들어주랴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14년간 은행에서 근무하던 홍씨는 작년 10월 정년퇴직을 하고 이화에 왔다. 그는 ‘투잡(two job)족’이다. 일주일에 3일은 경비원이지만 나머지 3일은 출판사 발행인으로 일한다. 멋쩍어하며 내민 명함에는 ‘첨단금융출판사 상무 홍성하’라고 찍혀있다. 은행에서 일하며 금융·투자 부분에 관심을 갖게돼 아예 출판사를 차렸다. 아직은 집에 사무소를 차린 소규모 출판사지만 지난 1년간 책이 꽤 많이 팔려나갔다. 지난해와 올해 펴낸 책의 초판은 매진됐다. 그는 “교보문고·영풍문고 같은 대형서점에서도 우리 출판사 책을 찾아볼 수 있어요”라며 웃었다. 그는 출판사 일을 계속하며 이화에서 새로운 정년을 맞고 싶다고 했다. 그는 “출근할 수 있는 사업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며 “경비원 일에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홍씨가 생활관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문 열기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관함에는 100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열쇠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처음에는 열쇠를 구별하는게 어찌나 힘들었던지…이것 뿐인가요? 6층에 동물실험실이 있잖아요. 흰쥐가 몇 백마리나 되요. 밤에 순찰 돌 때는 머리가 쭈뼛 섰죠”
오랜 시간 학생들과 마주하기에 이화인들은 그에게 ‘부담’도 ‘기쁨’도 되는 두 얼굴을 가진 존재다.

“ 포근하다고 음료수를 사다주는 학생들이 있어요. 인사도 어찌나 예의바르게 하는지요. 이럴때 보람을 느끼죠”

그러나 언제나 학생들이 좋은 모습만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짬을 내서 저녁밥을 한 숟가락 뜨고 있으면 “문 열어달라”고 재촉하는 학생들도 있다. 이럴 때면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먹고 돌아온다. 생활관 소극장도 그에게 있어 큰 골칫거리다. 학생들이 쓰레기 처리는 물론이고 무대장치도 뜯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청소하는 아주머니들이 어찌나 힘들어하는지 모른다”며 학생들의 주의를 부탁했다.
그동안 도난 사고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그는 정색을 했다. “천만의 말씀! 아직 불미스러운 사건은 없었습니다. 생활관만큼은 제가 지킬 거예요”
어디선가 이화인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오늘도 생활관은 그가 있기에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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