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대장정. 대학생이라면 한번쯤 꿈꾸는 로망이 아닐까. ‘전국대학생기행연합’에서 주최하는 ‘국토종단 통일대장정’에 신청했을 때, 어머니께서는 “백화점 한 바퀴 도는 것도 힘들어하는 애가 퍽도 잘 걷겠다”며 내가 하루 만에 돌아올 거라고 장담하셨다. 하지만 선배를 붙들고 눈물을 흘렸을지언정 중도에 포기하는 일은 없었다. 결국 8월1일(화)~17일(목) 17박18일 동안 400km가 넘는 거리를 완주했다.

‘통일대장정’은 코스부터 남달랐다. 목포에서 시작해 10일 차에 평택, 14일 차에 서울을 지나 마지막 날 임진각에 도착해 끝이 났다. 평택을 지날 때에는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평택 미군기지 확장이 우리나라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다. 피곤해서 토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뜻a 깊은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가슴이 벅찼던 곳은 바로 임진각이다. 그간의 힘들었던 시간을 뒤로 하는 완주의 기쁨 때문기도 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통일을 노래하는 4백여 명 친구들의 열띤 목소리와 즐거운 몸짓은 임진각에 멈춰있는 철마가 곧 북으로 달릴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보여줬다. 반면 통일을 염원하는 수많은 깃발과 리본이 철조망에 걸려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대장정을 반도의 허리에서 끝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기도 했다. 어떤 친구들은 펑펑 눈물을 쏟아내었고 어떤 친구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좋아했다. 웃음과 눈물이 끊이지 않는 감동의 순간이었다.

물론 즐거운 순간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작열하는 태양은 뜨겁다 못해 따가웠고 아스팔트의 열기는 운동화 밑창을 녹였다. 특히나 처음 며칠 목포에서 고창까지 전라남도를 지날 때, 그늘 한 점 없는 도로는 몸도 마음도 지치게 했다. 몇 번이나 눈물을 왈칵 쏟았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때마다 시원한 물을 건네며 어깨를 다독여주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주저앉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도 분명 많이 힘들었을 텐데…. 지금도 마음이 짠하다. 수도 없이 물집이 잡힌 서로의 발을 보며 웃고 떠들고 약을 발라주던 밤들이 꿈처럼 아스라하다.

우리는 점점 개별화된 일상에 익숙해지고 있다. ‘더불어 사는 세상’ 등의 말귀는 그저 굳어버린 화석처럼 상투적인 것에 지나지 않게 돼 버렸다. 한 강의실에서 많은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종종 외롭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이번 여름에 공부를 위한 시원한 강의실을 제쳐놓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뜨거운 아스팔트를 택했나 보다. ‘함께 한다’는 따뜻함과 소중함은 대장정이 가져다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여 통일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서울로 돌아오며 친구와 나눴던 진심 어린 농담이 떠오른다. “통일이 돼서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39박40일 일정의 국토대장정이 생기면 그때도 꼭 함께하자” 겉으론 웃었지만 이 말을 농담으로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씁쓸했다. 하지만 임진각에서 통일에 대한 희망을 느꼈듯이,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통일을 열망한다면 언젠가는 이뤄지리라 믿는다. 사람의 따뜻함과 통일의 가능성을 가슴에 품은 채, 내 발로 꼭꼭 밟았던 이 땅과 이 나라에 더 관심을 두고 고민하는 삶을 살고 싶다.



박민희(회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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