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의 가을밤이 연극으로 물들었다. ‘가을연극제’란 이름 아래 매주 다른 연극이 생활관 소극장에 오르고 있다. 관객들이 객석에서 울고 웃는 동안 무대 뒤에선 무슨 일이 벌어질까.
7일(목) 오후7시10분. 소극장 무대 바닥이 푸른 잔디로 뒤덮여 있다. 체대 연극동아리 ‘늪’이 셰익스피어의 유쾌한 희극 ‘한여름밤의 꿈’을 선보이기 20분 전이다.
무대 왼쪽에 있는 조그만 문을 열자 탈의실이 나타났다. 좁고 어두운 공간에 옷과 화장품 도구들이 뒤범벅돼 있다. 어리바리한 성격의 광대 역을 맡은 김예지씨가 밀짚모자를 쓰고 전신거울을 보며 키득거린다. 이내 숨을 가다듬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한 마디를 내뱉는다. “왜?” 곧 무대 위에서 할 대사다. 고음으로 “왜!”라며 빽 소리를 지르는가 하면 억양을 바꿔 “왜∼에?”라고 말해본다. 짧은 대사라도 여러 버전으로 되풀이해 연습하느라 여념이 없다. 김민정(퀸스 역)씨는 소파 위에 놓여진 도넛 한 개를 한 입 크게 물었다. “긴장 풀려면 단 게 들어가 줘야 되는거거든∼”
드디어 막이 올랐다. 단원들 대부분이 무용과 학생들로 구성돼 있는 특성을 살려 오프닝은 멋진 춤으로 시작했다. 아름다운 몸짓을 보여준 배우들은 조명이 꺼진 틈을 타 후다닥 탈의실로 뛰어들어왔다. 숨 돌릴 새도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옷을 갈아입는다. 빨간 드레스를 입고 휘휘 돌았던 나정원씨는 5분만에 천방지축 요정 ‘퍼크’로 변신했다.
인간의 왕비와 요정의 왕비 등 1인2역을 맡은 송혜민(티타니아 역)씨는 머리 위 왕관을 벗어 던지고 그 자리를 꽃으로 채운다. 인간이 요정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임혜린(거미줄요정 역)씨가 혜민씨 머리에 꽃을 달아주고 스탭인 김하나씨가 혜린씨 등의 지퍼를 채워준다.  
화장은 김수산(겨자씨요정 역)씨 몫이다. 친구들의 떨어진 속눈썹을 붙여주고 입술 라인을 수정해 그려준다. 객원배우 심재현씨가 극 중 ‘줄리엣’을 연기하는 장면이 있다. 이를 위해 두세 명이 달라붙어 붉은 볼터치를 하고 새빨간 립스틱을 칠했다. 보라색 아이섀도를 바르던 수산씨가 끝내 웃음을 풋 터뜨렸다. “못 봐주겠다, 정말!”
무대 뒤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방금 전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들어오자마자 입부터 삐죽 나온다. 요정의 왕 ‘오베론’ 역의 객원배우 이관우씨는 커튼 뒤로 들어오며 얼굴을 감쌌다. 대사를 틀려 멈칫한 것이 영 속상하다. 들고있던 장미를 내던졌다.
배우들도 자신이 나가지 않는 부분에는 동료들의 연기를 지켜보는 관객이 된다. 전다윤(헤르미아 역)씨와 김정민(헬레나 역)씨는 커튼을 살짝 들춰 무대 위 광대패들의 연기를 구경했다. 원래 무대 뒤에선 숨죽이고 있어야 하지만, 관객들이 웃자 이를 놓칠세라 참았던 웃음을 터뜨린다.
공연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엇갈렸던 커플들이 제 사랑을 모두 찾고, 오베론과 그의 왕비 티타니아도 화해했다. “자, 그럼 안녕히 가세요”라는 나정원씨의  대사를 끝으로 객석에서 힘찬 박수가 터져 나왔다. 조마조마하게 마지막을 지켜보던 스탭 곽지혜씨는 그들에게 누구보다도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끝났다! 수고했어! 너무 잘했어!”
커튼콜을 마치고 우르르 대기실로 몰려오는 배우들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퍼졌다. 온몸을 뒤덮은 땀과 함께, 그들만의 ‘한 가을밤의 꿈’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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