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상적인 징계 규정 자의적 해석 가능... 징계 후 이의 제기 과정 없어

“징계조치를 내린 학칙 자체가 비민주적이었다.”
교수 감금을 이유로 4월19일(수) 출교 조치된 고려대 강영만(사범·4)씨의 말이다. 그는 신속한 징계를 위해 학교가 올해 3월 징계권한을 바꿨다고 덧붙였다.

올해 상반기 대학가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본교를 비롯한 고려대·연세대 등 전국 대학 총학생회가 등록금 투쟁을 시작으로 학교와 마찰을 빚어왔다. 이 과정에서 고려대는 4월5일(수) 교수감금사태 이후 17명의 학생에게 출교·유기정학·근신의 징계를 내렸다. 동덕여대는 7월 총장실을 점거한 학생에게 무기정학(6명) 및 유기정학(4명)의 조치를 취했다. 또 항공대는 총장실을 점거해 행정서류 및 비품을 무단으로 반출한 총학생회장 외 2인에게 무기정학과 근신을 내렸다가 취소한 상태다.

기본권 침해하는 학칙

대학 내에서 학칙은 사회의 법과 같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 학칙은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조항이 상당수다.

지난해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발표한 ‘대학 학칙 인권침해현황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75개교 가운데 223개교(81.9%)가 집회 결사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었다. 또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을 가진 학교도 186개교(67.6%)에 이르렀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도 있다. 헌법은 언론·출판과 검열, 집회·결사에 대해 등록이나 신고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국내 대학이 게시물을 부착할 때 학생처 등 일정 기관에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같은 인권 침해는 국립대학보다 사립대학이 더 심각했다. 통계의 모든 분야에서 사립대학은 국립대학의 수치를 최대 2배까지 넘었다.

징계규정은 어떤가

고등교육법은 징계 전에 학생에게 의견진술의 기회를 부여하는 등 적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 128개 대학의 징계규정을 조사한 결과(전국 128개대학 징계규정 분석 보고서·최순영 의원) 구두로 변론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학교가 62.5%에 이르렀다. 징계 결정 이후 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과정도, 규정도 없는 학교도 87.5%였다. 이 수치는 본교도 포함된다.

2001년 서울행정법원은 총장실을 점거한 서울시립대 학생들에게 내려진 퇴학처분을 취소하도록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총장실 점거는 학교 측이 학생들과 협의해야 할 문제를 일방적으로 추진해 학교 측과 학생들 사이에 불신감이 조성된 데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학생처가 징계를 통해 학생운동을 변화시키려는 학생처의 의도가 보인다”며 재량권을 남용한 처분이라 정의했다. 이러한 판결에도 많은 학교는 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이번 고대 출교 사태나 지금까지의 징계 관행은 일방적인 통보에 가깝다. 근신을 받은 이유미 고대 총학생회장은 “변론의 자리가 아닌 교수님은 꾸짖고 해당 학생은 혼나는 자리였다”고 말했다. 그는 “잘못했다고 하면 참작하겠다는 식의 진행은 이 자리가 얼마나 형식적이었는지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송병춘 변호사(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교육ㆍ청소년위원회(준))는 “변론 뿐 아니라 징계 후에도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절차가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추상적인 조항도 문제

고려대 표시열(행정법 전공)교수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대학의 개혁’책에서 학생 생활지도에 관한 학교규칙은 추상적인 표현을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어떤 행위가 금지됐는지 충분히 알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송병춘 변호사는 본교의 학칙에 대해 “징계의 사유가 지극히 포괄적이고, 불확정 개념으로 돼 있다”고 지적했다. 본교 규정은 △‘불법행사’와 학교재산의 '부당사용' △폭언 △소프트웨어 등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학생의 본분에 어긋난 행위 등이 이에 속한다. 연세대의 경우 △입교정신을 위배한 학생 △비신사적인 행위 또는 학생신분에 벗어난 행위를 한 학생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

안소현(국문·3)씨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정의를 내리거나 부연설명을 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송 변호사는 “징계의 기준이 부정행위에 대해서만 규정되어 있을 뿐, 기타 사유에 대해서는 아무런 규정이 없다. 따라서 자의적인 징계를 내릴 위험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외국 대학은 어떤가

미국 하버드대학교의 학칙은 차별 금지·말이나 신체적으로 폭력하지 않기·정직하기 등을 명시한다. 술이나 담배·도박·성폭력 등도 세부항목을 두어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학내 컴퓨터와 네트워크 이용의 규정을 보면, 주와 정부가 정한 법에 따라야 한다고 전제를 둔다. 또 허가되지 않은 접근으로 부당이익을 취하거나, 무료로 위조된 프로그램을 사용하면 문제가 된다. 다른 학생의 아이디를 몰래 사용하는 것도 규칙을 어기는 행위다. 이 밖에도 무려 6쪽에 달하는 세부 사항들이 기록돼 있다.

본교의 ‘학내 컴퓨터·통신망·데이터·소프트웨어 등을 부당하게 사용하거나 그 운용을 방해한 학생’을 한 줄로 규정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하버드의 규정에서 특이한 점은 일방적인 금지가 아니라 학생들을 설득한다는데 있다. 술 담배 조항에서 건강상 어떤 문제가 유발될 수 있는지를 상세히 설명하고, 왜 금지하는지를 규정에 설명하고 있다. 또 학생들이 불합리하다고 여기는 학칙은 지정된 사이트에서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 UC버클리대학교의 학칙 중 학생조직에 대한 규정에서 총장과 주임 관리에게 지도를 받아야 하는 것은 본교와 비슷한 점이다. 그러나 지도를 하는 자가 그 그룹이 지정한 학생이나 후원자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앞으로의 징계규정

본교 총학생회는 징계규정 공포 당시부터 지금까지 징계규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지연 총학생회장은 “5월31일(수) 다만탑에서 내려오면서 징계규정 세부조항에 대한 수정의 자리를 가지자는 학교 측의 공문을 받았다”고 전했다.

이수미 학생처장은 징계규정 자체는 철회가 불가능 하나 학생들의 의견이 수렴되면 논의에 부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최순영의원은 현재 대학 교칙의 인권침해 조항과 징계규정 문제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상태다. 최 의원은 “오는 10월 국정감사를 거쳐 고등교육법을 구체적이고 민주적으로 개정하도록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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