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 8.6cm·세로 5.2cm의 하얀 명함 위에 까맣게 박힌 일곱 글자, ‘사진기자 김하영’. 7개월의 수습생활 끝에 나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제 나는 ‘초짜라고 봐줄 수 없는’ 어엿한 정기자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것도 이전과는 다르고, 스스로도 뭔가 달라져야 하는 시기다. 이런 생각 때문일까? 본격적인 제작이 시작된 후부터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히 정기자의 몫인 ‘1면사진’ 의 압박은 수시로 나를 찾아와 괴롭혔다.

이때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8월25일(금) 오전10시 2005학년도 후기 학위 수여식. 아침부터 추적이는 비는 험난한 하루를 암시하고 있었다. 열시에 도착하기 위해서 아홉 시 반에 집을 나섰다. 학교까지 10분 거리임을 생각하면 나름 일찍 나온 것이건만, 이럴수가!! 완전히 내 착각이었다. 도로에 가득 찬 차들은 움직일 생각을 않고, 시간은 빛의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내 느낌에는 정말 그랬다.) 결국 식이 시작된 뒤에야 도착했고, 흐르는 땀을 닦을 새도 없이 사진을 찍어야 했다.

한 컷을 찍은 뒤 사진을 확인했다. 그런데 이건 또 웬일. 사진이 너무 어둡게 나왔다. 높고 넓은 대강당의 특성상 스트로보(조명)가 터져도 반사를 시킬 공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인물에 직각으로 스트로보를 터뜨릴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사진에 사람은 안보이고 빛만 보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스토로보 각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오리무중이었다. 간신히 방법을 찾았나 했더니 저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 “이로써 2005학년도 후기 학위 수여식을 마치겠습니다”. 하늘은 점점 개이기 시작했지만 내 마음 속은 천둥번개가 요동쳤다.

그 때 나는 식장을 나서는 사람들 발에 본드칠이라도 하고 싶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식장 밖에 우글대는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사진을 찍었다.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다. 학보사로 돌아와 선배와 함께 사진을 확인했다. 결과는 굳이 쓰지 않아도 독자들이 짐작하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조금 충격에서 벗어났다 싶으면 찾아오는 국장님과 부국장님의 “하영아 졸업식 사진 보자”. 괴롭다.

오늘 나는 하루 세끼를 한숨과 꾸중과 반성으로 든든하게 채웠다. 어쩌면 오늘 하루뿐만이 아닌 더 많은 끼니를 이렇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식은 금물’ 이라고 했다. 칭찬이 과하면 자만을 부르고 반성이 과하면 스스로를 못난 사람으로 만든다. 이제부터 허울뿐인 ‘정기자’ 가 되지 않도록 식단 조절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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