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계가족만 9명, 일가 친척까지 모두 15명이 넘는 이화가족이 있다. 할머니·어머니·자신 그리고 세 여동생, 그의 딸까지. 바로 본교 음악대학 윤미재(피아노 전공, 기악·65년졸)교수 가족이다. 이들은 창립 이래 유일한 직계 4대 이화가족이다.

윤교수 가족과 이화의 만남은 그의 외할머니인 윤심성(대학과·15년졸)씨부터 시작됐다. 윤심성씨는 본교 2회 졸업생으로 이화학당을 졸업한 후, 유관순 여사를 가르치기도 했다. 윤교수는 “할머니께서는 학창 시절 처음 배운 풍금이 너무 재밌어 밤에는 이불로 창문을 막고연습하셨대요” 라며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회상했다.

윤심성씨는 윤교수가 본교 음대를 다니는 동안 뒷바라지를 도맡았다. 날이 추울때는 윤고수가 등교하기 전 부뚜막에 신발을 데워주고, 몸보신을 하라며 미역국을 학교로 싸온적도 있단다. 윤교수는 당시를 기억하며 “할머니는 저를 찾을 때, 당시 음대 학장님이시던 김영의 교수님께 직접 부탁하시곤 하셨어요”라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윤교수의 이모할머니인 윤성덕(대학과·22년졸)씨는 ‘이화글리클럽합창단’을 창단했다. 글리클럽합창단은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 앞에서 공연을 할 정도로 그 당시 큰 호응을 얻었다고 한다. 윤교수는 여담이라며 당찬 여성이었던 윤성덕씨와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씨가 한 때 연인이었다는 이야기도 살짝 들려줬다.

윤교수는 80년대 초부터 피아노 전공 학생에게 주는‘신숙황(음악과·41년졸)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윤미재 교수는 “심장마비로 일찍 떠나신 어머니를 기리기 위해 장학금을 개설했다”고 전했다. 그는 94년 만난 어머니의 외국 은사님이 예전에 어머니가 드렸던 놋주발을 간직하신 걸 보고 눈물이 났었다고 회고했다.

윤교수 자신의 대학 생활은 어떠했을까. 그는 “할머니, 어머니 모두 이대를 다니셔서 이화가 나의 친정같았다”고 말했다. 윤교수는 서울예고를 1등으로 졸업해, 서울대에 진학할 수도 있었지만 “나를 손녀처럼 여겨주신 김활란 전 총장, 김옥길 전 총장이 반드시 이대에 와야 한다고 설득하셨다”며 지난 날을 떠올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를 이대에 진학하게 한 힘은‘3대 이화 가족’의 달성이었다고. 그리고 윤교수 아래 한명을 제외한 세명의 여동생들은 모두 자연스럽게 이대에 왔다고 한다.

실제로 윤미재 교수는 김활란 전 총장과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 윤교수가 유학시절 썼던 편지에 친필로 답장을 해주고, 총장 본관에서 당시 드물었던 슈타인 피아노를 쳐볼 수 있도록 허락하는 등 그를 손녀처럼 아꼈다고 한다. 윤교수의 뿌리 깊은‘이화 사랑’은 모두 이유가 있는 셈이다. 그래서 윤교수는 그의 딸에게도 그 길을 열어줬다.

“어머니가 ‘4대 이화가족’을 만들어야 한다고 저를 설득하셨지요” 윤교수의 딸인 오유진(의직·94년 졸)씨는 고등학교까지 미국에서 졸업해 처음에는 한국에서 대학을 진학할 생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오유진씨는 아령당에서 1주일간 생활한 후 오히려 어머니께 감사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는 지금까지 친하게 지내는 친구 6명을 모두 이화에서 얻었다”며 본교 입학은 정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오유진씨는 학생 시절, 가정대(현재 생활환경대학) 시험은 언제나 음대 교수가 감독했다며 “어머니의 선후배님께 답안지 제출하는 것이 민망해 다른 학생들과 우르르 함께 내곤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또 그녀는 미국에서 살다온 영어 실력을 믿고 친구들과 영어1 수업을 6번 결석해 D를 받았던 웃지 못할 사연을 공개하기도 했다. 오유진씨는 “6번 결석하면 F라는 규칙을 6번까지는 용인된다는 걸로 잘못 알았지 뭐에요”라며 귀여운 변명을 덧붙였다.

어머니와 딸이 공유하는 이화의 기억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들은 나란히 “이대는 정말 추워요”라고 말했다. 오유진씨는 겨울이 되면 어머니가 자꾸 내복을 입으라 해서 처음에 짜증을 냈다며 “그런데 아무래도 먼저 다녀본 사람 말이 맞나봐요”라며 웃었다.

윤교수는 “이화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유진이가 첫째로 아들을 낳았다”며 “둘째는 딸을 낳아 5대 이화 가족을 이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여년 후, 개교 이후 최초의 5대 이화가족이 생길지도 모를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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