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 120주년을 짚어본다

우리 민족의 암흑기 1900년대 초, 이화학당 역시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독립을 외치는 목소리가 각계각층에서 터져나왔던 그 시절, 이화도 독립운동에 힘을 쏟았다. 이화의 독립운동을 말할 때 뺄 수 없는 인물은 바로 유관순 열사. 그는 3·1 운동이 일어났던 1919년,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이화인 20여명과 만세 시위에 참여했던 그는 일본 경찰에 붙잡혀 훈방 조치를 받고 풀려났다. 이 후 학교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자신의 고향인 충남 천안에 내려가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돼 서대문 형무소에서 1920년 10월14일 17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유관순 열사 외에도 1920년대 초에는 ‘이화 7인 전도대’라는 단체가 결성돼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고자 지방을 순회하며 집회와 강연 활동을 펼쳤으나 이들을 감시하던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됐다. 일제의 온갖 위협에도 희생을 아끼지 않았던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많은 이화인들의 노력으로 이화의 독립운동은 한국 역사의 한 부분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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