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립 120주년 기념 특별 기획, 변영주 감독·유지나 평론가 여성주의 표방 ··· '왕의 남자' 마케팅 담당 회사 대표도

이화에는 연극 및 영화 관련 학과가 없지만, 두각을 나타내는 영화인들을 여럿 배출했다. 학교에서 키운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한국 영화사 발전을 위해 묵묵히 애쓰고 있는 그들을 분야별로 살펴봤다.

▷ 여성주의·실험영화 감독
아직까지 사회 곳곳에 뿌리 박혀 있는 남성 중심적인 사고는 영화에서도 드러난다. 여성이 성적인 대상으로 묘사되는가 하면, 남성과 비교해볼 때 비주체적 입장에 서 있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여성 감독이 만드는 페미니즘 영화는 존재 자체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화 출신 감독들 중 가장 유명한 변영주(법학·89년졸)씨는 대표적인 여성주의 감독이다. 그는 종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을 다룬 3부작 다큐멘터리 영화 ‘낮은 목소리’를 통해 90년대 중반 이후 여성영화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심영섭 평론가는 영화전문잡지 ‘씨네21’ 2000년 2월1일자 기사에서 “‘낮은 목소리’의 성과는 전략적으로 다뤄질 수 있는 정신대 문제를 정치적으로 다루지 않고 여성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 변 감독은 2002년에는 전경린의 소설 「내 생에 꼭 하루뿐일 특별한 날」을 ‘밀애’로 영상화했다. 이 영화는 한 여성이 자아를 찾는 여정에서 나타나는 일탈과 매혹을 주체적인 여성의 시각으로 풀어냈다는 평을 받았다.


대중 인지도는 낮으나 여성주의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자신의 위치를 굳힌 장희선(사생·95년졸) 감독도 있다. 그는 영화제를 통해 할머니·어머니·손녀의 일상을 담은 ‘고추말리기’, 직장 내 성희롱을 다각적으로 다룬 ‘화기애애’ 등의 단편영화를 발표했다. 특히 장 감독의 실제 어머니와 할머니가 출연한 ‘고추말리기’는 여성 간의 관계를 진지하면서도 재치있게 그려내 제 2회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한편 독립영화 1세대 감독인 한옥희(한국어문학·71년졸)씨는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실험영화의 숨결을 불어넣었다. 한 감독은 1974년 본교 출신들이 주축이 된 실험영화 창작집단 ‘카이두’를 만들어 70년대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대표작 ‘무제’를 통해 창작자의 자기 검열이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모습을 공격적으로 그려냈다. 유지나 평론가는 “최초의 아방가르드 영화를 제작해, 미개척 분야를 앞서갔다는 점에서 한 감독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외 귀신이 보이는 두 남녀에 대한 영화 ‘4인용 식탁’의 이수연(교공·93년졸) 감독, 이민 1.5세로 캐나다에서 ‘러브 앤 터그’ 등의 영화를 제작한 류수경(정외·91년졸) 감독 등이 있다.


▷ 기획 및 배급
‘살인의 추억’·‘연애의 목적’·‘달콤살벌한 연인’ 등 말 그대로 ‘짱짱한’ 영화들 뒤에는 한국 영화계를 주름잡는 기획사 ‘싸이더스’가 있다. 싸이더스 차승재 대표의 부인인 김선아(법학·92년졸) 프로듀서도 본교 출신이다. 김 프로듀서는 싸이더스에서 영화를 제작하고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역도산’·‘지구를 지켜라’·‘봄날은 간다’ 등의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그의 지휘 아래 태어났다.


국내에서 잘 만들어진 영화를 해외에 알려 국위 선양하는 동문도 있다. 한국영화 해외 마케팅 대행사인 ‘씨네클릭아시아’의 서영주(경영·91년졸) 대표가 그 주인공. 그는 ‘박하사탕’으로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린 이후, ‘빈 집’·‘오아시스’·‘올드보이’ 등 국내 화제작을 세계에 선보여 한국영화 붐을 주도했다. 서 대표는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를 상대로 한국영화 리메이크 수출을 개척하기도 했다. ‘조폭마누라’·‘달마야 놀자’·‘장화·홍련’ 등의 리메이크 판권은 모두 씨네클릭아시아를 통해 팔렸다.


이외에도 ‘왕의 남자’·‘태극기 휘날리며’ 등 역대 흥행 최고 순위에 있는 영화의 마케팅을 훌륭히 성공시킨 홍보대행사 ‘영화인’의 신유경(신방·90년졸) 대표, 최근 ‘음란서생’을 제작한 영화사 ‘비단길’의 김수진 대표가 있다.


▷배우 및 평론
연극영화과가 있는 타 학교들에 비해 본교 출신 영화배우들이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김혜자(생활미술·60학번), 김여진(독문·95년졸), 박정자(신문·04년 명예졸) 등의 배우들이 영화계에서 실력파 배우로 인정받고 있다. 그 중 ‘처녀들의 저녁식사’로 영화계에 데뷔한 김여진씨는 1998년 청룡영화제·춘사영화제 신인여우상을 수상했다. 이후 ‘박하사탕’·‘취화선’, TV드라마 ‘대장금’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다.


평론계에서도 이화인의 활약이 돋보인다. 현재 동국대 교수로 재직 중인 유지나(불문·83년졸)씨는 영화평론계에서 거침없는 입담을 자랑하는 거목이다. 특히 여성 주체의 시각에서 나오는 특유의 날카로운 비평으로 대중에게 인기가 높다. 2002년에는 기고글 및 영화제 심포지엄 등에서 발표한 글과 개인적으로 써 놓은 글을 엮어 「유지나의 여성영화산책」을 펴내기도 했다.


1991년 월간지 「영화예술」 신인평론에 당선된 이래 평론활동을 해온 수원대 조혜정(법학·83년졸) 교수도 2003년에 평론집 「그리고 영화는 계속된다」를 출간했다.


▷기타
총체적 예술인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음악·미술 등 각 분야의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당연지사.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름을 떨치고 있는 이화인들이 있다. 작곡·노랠연주 등 다양한 음악활동을 하는 노영심(종교음악·90년졸)씨는 ‘아홉살 인생’·‘그녀를 믿지 마세요’ 등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황현규(신방·80년졸)씨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분장 전문가다. ‘형사’ 속 배우 강동원의 그윽한 ‘슬픈 눈’은 그의 손을 거쳐 더 빛을 발했다.


또 국내 권위 있는 영화제를 총괄하는 이들도 있다. 1997년에 시작해 올해 8회 째를 맞은 서울여성영화제의 이혜경(사회사업·75년졸) 집행위원장, 임성민(신방·88년졸) 수석프로그래머도 본교 출신이다. 서울여성영화제는 2003년 문화관광부가 가장 우수한 영화제로 발표했을 정도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임성민 프로그래머는 제 56회 베를린영화제 ‘인터내셔널 포럼 오브 뉴시네마 부문’에서 심사위원을 맡는 등 대내외적인 활동으로 서울여성영화제의 위상을 더욱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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