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대학보사 기자다.”

  아직도 나는 이 말이 무겁다. 마침표를 채 찍기도 전에 입 밖으로 굴러 떨어질 것만 같다.
김하영이란 이름 앞에 ‘이대학보 기자’라는 수식어가 붙게 된 날, 나는 기자가 됐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내 이름을 달고 나가는 기사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봐왔던 멋있는 기자의 모습 등 내 머릿속은 부푼 꿈으로 가득했다. 때문에 내게 있어 기사를 쓴다는 것은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단지 멋있는 일 중 하나였다.

  어디 기사 뿐이겠는가. 사진부에 들어가 처음 사진을 배우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는 보헤미안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나는 그저 겉멋만 잔뜩 든 어린아이였다.

  기자란 말이 한없이 가벼웠던 그때. 나는 그 할아버지를 만났다. 필름 두개와 함께 사진을 찍어오라는 부장언니의 말에 무작정 삼청동으로 향했던 그날. 처음 잡아보는 필름카메라에 가슴이 설레는 것도 잠시, 뭘 찍어야 할까 하는 고민에 빠져야 했다. 그러다 인도 한 가운데서 칼을 갈고 계시는 할아버지 한 분을 보게 되었다. 독특한 장면이라는 생각에 나는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다행히 할아버지는 흔쾌히 사진촬영을 허락해 주셨고 나는 그 분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께서는 내가 친 손녀 같았는지 사진을 찍는 내내 자신의 인생과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내가 이 일을 한 지는 적어도 40년은 됐을꺼야. 허허”

  할아버지의 호탕한 웃음을 따라 칼도 춤을 춘다. 칼을 따라 할아버지의 손의 주름도 함께 꿈틀거린다. 찬바람을 맞으시며 홀로 칼을 갈고 계시던 할아버지. 그런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려니 나는 갑자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단순히 흥밋거리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할아버지를 내가 욕되게 한건 아닌지.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그동안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취재꺼리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것, 학보사 기자로 좀 더 많은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던 것 등 후회스런 모습만 가득했다. 기자란 이름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담아내야 할 문제와 사람들의 모습에 좀 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두 번의 제작을 끝낸 지금, 나는 아직도 고민 중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쉬워지기는 커녕 점점 더 어려워진다.‘기자’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어떤 기자여야 하는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지만 뚜렷한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마 12번의 제작이 다 끝나고도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얻지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은 내가 평생 가슴에 새기고 가야할 물음인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섣불리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으려 하기보다 헛된 마음을 모두 비워내고 노력하는 것. 모든 문제와 사람들에 대해 열린 마음으로 정직하게 다가가는 것. 이것이 내가 제일 먼저 갖춰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이렇게 하나하나 배워가고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게 될 것이다.

  '기자’라는 말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내 입에 꼭 들어맞게 될 그 날까지 김하영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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