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of Ewha

축제를 통해 매년 5월이 되면 이화인들은 하나가 된다. 때로는 ‘재미’를 위해, 때로는 ‘의미’를 찾아 젊음을 만끽한다. 그래서 축제는 이화의 문화를 설명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 되었다. 60년∼70년대를 풍미했던 ‘메이퀸’과 ‘쌍쌍파티’, 오락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 모두가 하나되는 대동의 장으로 변모한 80년대, ‘장터’가 주를 이뤘던 90년대, 위기를 맞게 된 2000년대의 대동제까지. 이제 그 역사 속으로 들어가보자.

1960년∼70년대 축제의 핵심은 단연 ‘메이퀸’과 ‘쌍쌍파티’다. 외적인 아름다움 뿐 아니라 우수한 성적과 지도력을 갖춰야 하는 ‘메이퀸’은 이화의 교훈인 ‘진·선·미’의 상징으로 축제를 더욱 화려하게 장식했다. 62년에 시작한 ‘쌍쌍파티’는 1천∼2천 커플이 참여해 포크댄스·빙고게임·캠프파이어 등을 진행하는 대대적인 행사였다. ‘쌍쌍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암표가 성행했고, 일일 파트너를 구해 참여하는 이화인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메이퀸’과 ‘쌍쌍파티’는 축제가 오락과 유흥으로 흐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시간이 갈수록 그 관심도 줄어들었다. 정영한(도서관학·78년 졸)씨는 “외부에서 보이는 뜨거운 관심과 달리 정작 재학생들은 ‘메이퀸’에 냉담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메이퀸은 78년, ‘쌍쌍파티’는 82년에 사라졌다.

대신 82년에는 강강수월랠우리 가락 부르기 등 민속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해 축제의 성격이 크게 변했다. ‘모두가 하나’라는 표어 아래 축제는 사회적 모순에 대한 문제제기의 장이 됐다. 85학번인 본교 나은진 교수(국어국문학 전공)는 “대동제의 끝은 항상 시위였다”며 “혼란스러운 시기라 학생들의 단체 활동이 두드러졌다”고 기억했다.

90년대의 ‘대동제’는 80년대와 성격이 유사하지만 ‘장터’가 활성화됐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노동자와의 연대를 통해 ‘대동’을 실현하고자 한 연대장터도 등장했지만 장터가 기금마련의 장이 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94년 5월30일(월) 자 이대학보는‘캠퍼스 전체가 장터같다. 음식 냄새로 가득찬 교정에는 휴식 공간을 모두 차지하고 매상을 올리려는 학생들의 호객행위가 눈에 띈다’고 보도했다. 이런 비판에도 불구하고 장터는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대동제’는 위기를 맞았다. 축제의 상징으로 꼽히는 영산줄다리기를 폐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면서 학생의 참여도 줄었기 때문. 2002년과 2004년에는 일부 이화인이 영산줄다리기에 앞서 진행하는 고사가 ‘우상숭배’라며 고사상을 뒤엎는 일도 있었다.

창립 120주년을 맞는 올해 이화의 ‘대동제’는 어떻게 진행될까. 제 38대 총학생회장 당선자 이지연씨는 “올 대동제에서는 학과·장터 별 특성을 활성화할 계획”이라며 프로그램 공모전을 통해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고 내용의 다양성을 확보할 것이라고 밝혔다. 축제에 대한 선배들의 애정은 여전하다. 채미숙(사생·82년 졸)씨는 “축제는 대학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라며 “평상시에 할 수 없는 특별한 활동으로 가득한 행사가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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