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of Ewha

봉사활동 바람이 이화에 불고 있다. 사회연대분과에 속한 봉사동아리 6곳의 회원수가 2002년 144명이었던 것에 비해 2005년엔 221명으로 늘었다. 매년 30명 정도가 꾸준히 증가한 셈. 그러나 지금과 달리 80년∼90년대엔 학생운동의 영향으로 ‘진정한 봉사활동’이 이뤄지지 않았다. 과연 어떤 시대적 흐름이 이화의 ‘봉사문화’에 영향을 끼쳤을까.


80년대의 이화인들은 방학 동안 경북 안동으로 농민학생연대활동(농활)을 가서 농사일을 거들고, 야학을 통해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도왔다. 언뜻보면 이런 활동은 무료로 남을 돕는다는 의미에서 봉사 활동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농활과 야학은 봉사만 하려는 목적으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이근영(중문·91년졸)씨는 “농활을 가는 이유는 봉사도 하고 농촌 사람들에게 정부의 잘못된 점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이정은(경영·93년졸)씨도 “야학은 운동권 학생들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90년대는 어떤 모습일까. 이 시기는 80년대와 현재의 모습이 섞여있는 과도기였다. 장성희(영문·96년졸)씨는 당시에 대해 “여전히 학생 운동의 연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반면 시간이 흐를수록 학생 운동이 아닌 ‘봉사’자체에 목적을 두는 단체가 생겨났다. 김희연(통계·00년졸)씨는 “95년 통계학과 학생회의 ‘연대사업부’는 과거 학생 운동의 조직·체계만 남아 있었을 뿐 활동은 지금의 봉사와 같았다”고 전했다.


이제 봉사활동과 학생운동을 관련짓는 이화인들은 거의 없다. 봉사동아리 ‘아가뽀뽀’에서 활동 중인 조연지(사복·3)씨는 “누군가에게 보탬이 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화인들은 장애인 돌보기·형편 어려운 학생에게 무료 과외하기·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글 가르치기 등 다양한 봉사 경험을 하고 있다. 세계 곳곳으로 뻗어나가는 봉사 활동도 늘어가는 추세다. 지난 해 베트남으로 해외 봉사를 다녀온 신병주(정외·4)씨는 “환경이 열악해 힘들지만 봉사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다”라고 전했다. 한편 이를 경력으로 인정하는 ‘자원 봉사제도’가 생기면서 취직을 위해 봉사 활동을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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