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전 1991년에 제 23대 총학생회장으로 활동했어요. 90년대 초에 사회 분위기가 많이 풀리면서 대학가 시위 문화도 변했습니다. 우리 학생회도 정치적 사안 뿐 아니라 학내 사안에 비중을 둬야 한다는 생각에서 등록금 투쟁을 진행하기도 했고요. 무섭고 어둡던 운동권의 분위기가 밝고 대중적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도 이때에요” 오지은(통계·93년졸)

“제가 입학하고 한 학기 정도 지나자 노래방 문화가 활개치기 시작했어요. 저와 친구들에게 노래방은 하교길에 으레 들르는 곳이었죠. 지금도 학교 앞에 있는 ‘배꽃노래방’에도 자주 갔어요. 신곡은 물론이고 ‘강하’까지의 곡들을 두루 섭렵했답니다” 정효림(피아노·96년졸)

“지금은 다들 인터넷을 사용하지만 예전엔 하이텔·나우누리 등의 PC통신을 애용했어요. 너도나도 채팅에 푹 빠졌고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번개’도 잦았답니다. 저도 ‘번개’로 영화를 보러 갔다가 상대방의 외모가 채팅 이미지와 전혀 달라 그 이후에 연락을 끊기도 했어요. 제 친구는 채팅했던 남자와 연합 MT에서 우연히 만나는 해프닝도 있었죠.” 김미정(국문·03년졸)

“졸업을 앞둔 1997년 11월, IMF 폭풍이 불어 닥쳤습니다. 저는 입사가 확정됐지만 재정이 어려워진 회사가 입사시기를 늦추는 바람에 7개월 가량을 기다려야만 했죠. 그래도 전 나은 편이었어요. 취직이 하도 안 돼 계약직으로 들어간 친구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런 친구들에게 학교의 ‘취업보도실’에서 찾아주는 일자리들은 큰 도움이 됐죠. 그 후로 학생들이 학원과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며 취업 준비에 힘을 쏟기 시작한 것 같아요” 김미영(경제·98년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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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운동이 확연히 줄어든 1993년 경부터 ‘이화교’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대자보들도 점차 자취를 감췄다. 학생회도 사회적 사안보다는 학내 사안을 해결하는데 힘쓰는 분위기였다.
특히 90년대는 대중문화, 오렌지족 문화, ‘서태지’ 중심의 신세대 문화 등 다양한 문화 현상이 나타났다. 90년대 초에 처음 생긴 노래방은 대중 문화 바람을 타고 크게 성행했다. 이대 앞 곳곳에도 노래방이 들어섰다. 또 90년대 중반에는 PC통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채팅과 동호회 활동은 이화인들에게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는 만남의 장을 마련했다.
1997년에는 IMF가 한국을 휩쓸었다. 회사마다 인원을 감축하고 신입사원을 받지 않다보니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로 졸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일부는 취업하려는 생각을 바꾸고 대학원으로 진학하기도 했다. 휴학을 하고 학원에 다니거나 어학연수를 가는 4학년 학생도 늘었다. 또 취업을 위해 미리 학점 관리를 하려는 2, 3학년들로 중앙도서관의 불은 꺼질 새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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