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졸업이 늦어지는 사례는 많다. 그러나 금혼학칙 폐지(2003년)로 재입학해서 몇십 년 만에 졸업을 하는 것은 우리 학교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한 모습이다. 반세기 동안 ‘대학중퇴’로 남아있던 그의 학벌에 졸업 도장을 찍고자 다시 학교로 돌아온 김이환(영문·57학번)씨를 만났다. 졸업 전 한 학기를 남겨두고 결혼을 하는 바람에 졸업장을 받지 못했던 그는 올해 3월 재입학했다.

 “우리 땐 ‘아이스박스’에서 채플을 했어” 50년대는 대강당이 너무 추워서 아이스박스라고 불렀단다. 재입학을 한 선배님이 아니라면 몰랐을 50년 전 캠퍼스 이야기다. 재입학한 후 캠퍼스 생활은 어떤지 들어보자.

지난 학기 그가 실력발휘를 한 것은 골프 수업이다. 그는 이 수업에서 교수를 도와 학생들의 자세 지도를 했다고. “사실 내가 골프를 좀 치거든”라며 소녀처럼 웃는 김이환씨. 함께 수업을 들었던 배은지(교육·2)씨는 “저는 교수님보다 선배님께 더 도움을 받았어요”라고 말한다. 수업을 듣는 25∼30명의 학생 대부분이 처음 골프를 접하기에, 1주일에 한번 뿐인 교수의 지도만으로 자세를 익히기는 무리다. 김이환씨는 학생이자 조교, 1인 2역을 한 셈이다.

또 그는 이번 학기 영어2 수업의 연극발표에서 스필버그 감독 작품의 역할을 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영문과 학생이니 영어수업은 걱정 없을 것 같다고 하자 “요즘엔 외국에 살다온 학생들이 많아서 다들 영어를 너무 잘해”하며 한사코 아니라고 손을 내젓는다.

김이환씨는 늦깎이 학생이지만 학업에는 누구보다 열심이다. 장지영(불문·4)씨는 “리포트도 직접 도서관에 가서 참고자료를 찾아보고 저희와 함께 영어 스터디그룹을 하기도 했어요”그는 김이환씨의 열정이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반세기 세월을 바로 뛰어넘기는 어려운 법. 학교생활 중 가장 힘든 점을 묻는 질문에 곧바로 “시험”이라고 답하는 것이 영락없는 학생의 모습이다. 그는 “나이가 드니까 순발력이 떨어져. 한참 읽어야 이해를 하는데 시험시간은 어찌나 짧은지”라고 푸념을 늘어놓는다.

또 “처음에는 강의실이 어디가 어딘지 몰라서 헤맸지”라며 예전을 회상했다. 그 당시보다 건물이 많아져 혼란스러웠던 것.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서 제일 먼저 강의실에 도착해 맨 앞줄에?앉아 수업을 듣는단다.

김이환씨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 들 중에서 가장 잘 한 것이 바로 재입학을 한 것”이라고 말한다. 다시 공부를 하고, 학생들과 어울릴 수 있기 때문이다. 1960년, 그가 결혼 때문에 졸업을 못하고 학교를 떠날 당시 한 학기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그러나 재입학 후 필수과목인 영어1·영어2를 모두 수강하기 위해 한 학기가 아닌 두 학기 동안이나 수업을 들어야 했다고. 내년 2월 학위수여식에서 영광스러운 졸업장을 받을 김이환씨. 입학한지 49년 만에 쓰는 학사모의 느낌은 어떨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이대학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