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 토요일 밤 11시 경.
나는 아직도 ‘학보사’에 있다. 학보사 공식 마감일인 금요일을 하얗게 지새운(솔직히 말하면 좁아터진 의자에 쭈그리고 앉아 몇 시간 눈을 붙이긴 했다)것도 모자라 황금 같은 토요일을 몽땅 이곳에 털어 붓고 있는 셈이다. 심지어 저기 저 벽에 붙어있는 시계란 녀석, 야속하게도 일요일 오전 0시를 향해 맹렬하게 달려가고 있는 중이다. 아, 장장 2일간의 대장정이라니. 한 마디로 최악의 상황이다. 어쭙잖은 농담이나 슬슬 나누며 동고동락할 사람이라도 곁에 있으면 그나마 나으련만, 유감스럽게도 편집실엔 달랑 나 혼자 뿐이다!

내 입으로 직접 말하긴 그렇지만, 편집기자도 아닌 일반기자가 이 시간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사실 수치다, 수치. 평소에 미리미리 취재를 했다면, 초고(처음 써낸 기사를 지칭)를 미리미리 써냈다면, 게다가 이번 주 ‘못 다한 이야기’가 내 차례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결코 이 시간까지 낑낑거리며 남아있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난, 꾸물대다 느지막이 취재를 시작했고, 더군다나 초고는 오늘에야 간신히 ‘짜냈다’. 게다가 이 모든 것들을 다 끝냈다고 생각한 순간, 학보사를 잽싸게 빠져나가려는 내 등 뒤로 청천 벽력같은 화살이 쏟아졌다.

“소연아, ‘못 다한 이야기’ 이번 주에 누구니?”

아차차,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아있었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모로 돌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을 수밖엔 도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 시간, 모든 사람들이 돌아 간 이 시간에 난 편집실에서 맹렬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요즘 내 생활은 나사가 풀려도 된통 풀렸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이라기 보단 수습딱지를 막 떼고 정 기자로 첫 발을 내딛던 그 순간부터 이런 ‘비행’의 싹이 꿈틀대고 있었다. 수습 생활을 마치고 나니, 웬일인지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강철 체력’을 자신하던 나였지만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노곤함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게다가 몸이 피곤하니 정신도 덩달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의지박약’ 끼가 다분하던 터인데 설상가상,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이러다보니 예비 정 기자로서의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 되는 7월부터 내 생활은 정신없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지각은 일쑤요, 과제는 미루고 또 미뤘다. 언제나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집에만 들어서면 싹 잊은 채 드러누워 버리곤 했다. 아니, 잊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여태껏 쌓아놓은 학보사에서의 입지는 형편없이 줄어들었고 심지어는 ‘문제아’로 낙인찍히기에 이르렀다. 집요하게 진실을 향해 내달리며 열정을 불사르던 그 때 그 시절의 ‘나’는 어디가고, 이젠 권태에 짓눌려 잔뜩 찡그리고 있는 우울한 한 인간이 괴롭게 서있을 뿐이었다.

결과물도 신통치 않았다. 열정이 없으니 취재도, 기사도 엉망일 수밖에 없었다. 이번 주 마감 때도 어김없이 이미 싸늘해진 부장 언니의 얼굴을 대면해야 했다. 탑 기사인데 하루가 지나도록 기사는 안 나오지, 취재도 영 부실한 것 같지. 언니 속도 어지간히 타들어갔을 터.

어둑어둑한 편집실에 홀로 앉아 이렇게 글을 끼적이다 보니 갑자기 회한이 몰아쳐 온다. 이렇게 끝 간 데 없이 방황하고 권태로워 하는 내 모습을 보는 것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 이 이상의 추락은 용납할 수도 없고, 용납해서도 안 된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학보사를 위해서도.

마라톤에 비유하자면, 나의 학보사 생활은 아직 반도 채 오지 않았다. 중도 탈락하느냐, 아니면 힘을 짜내 다시금 경주를 시작하느냐. 그건 나의 의지에 달렸다. 인생은 위기의 연속이다. 위기를 극복해냈다 싶으면, 또다시 위기가 닥치고...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는 인간적으로 성숙해진다. 지금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시련도 인생이 나에게 내준 ‘숙제’라고 생각한다. 진부하지만, 역시 이럴 땐 배에 힘 딱 주고 이렇게 외쳐줘야 한다.

“아자, 아자, 파이팅!”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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