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제정 여부 둘러싼 찬반 논쟁 계속돼

쟝상총장 이화가 112주년이 되면서 과거 100년사를 알아본 결과 김활란 박사가 이화를 확장시키는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했다.

이에 김활란 박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그중 하나는 여성상을 제정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장학금을 책정해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김활란 박사는 지난 100년간의 한국 근대 여성사, 더 확대해 조선시대 500년까지 합쳐 우리가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한국이 낳은 야마도 거의 유일한 세계 여성 지도자이다.

콜롬비아 대학에서 ‘한국 부흥을 위한 농촌 계몽’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여성 최초의 박사가 되고 이화여전을 이화여자대학교 즉 당시 최초의 종합대학교로 승격시키고 의학, 약학, 자연계열을 설치한다.

김활란 박사는 이렇게 교육가로서 뛰어날 뿐 아니라 한국 여성 운동의 틀을 잡은 여성 지도자 이기도 했다.

그러나 40년대쯤 되면 일제에 의해서 발생한 오욕적인 면모를 발견하게 된다.

이에 대해 본인은 조만식 선생, 김성수 선생 등 많은 그 당시의 영향력 있는 지도자가 민족적인 아픔을 스스로 감당했다고 생각하며 김활란 선생도 마찬가지였으리라 본다.

이런 것을 총체적으로 평가할 때 많은 사람이 한국이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여성지도자가 김활란 박사라는 것에 동의했고 김활란 박사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상을 제정하게 됐다.

기념사업회와 학생과의 대화가 더 폭넓게 이뤄졌으면 좋았겠지만 상 제정 경과에 대해서는 너그럽게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김흥호 목사(56년∼84년 교목) 어느 기자가 김활란 박사가 친일파라고 쓴것을 읽었는데 사실 김활란 박사는 일본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당한 사람이다.

김활란 박사가 징병에 관한 글을 썼다고 하지만 그것은 일본이 쓴 후 강제로 도장을 찍도록 한 것이지 직접 쓴것이 아니며 당시 학도병은 일본 사람이 끌고 간 것이다.

그 당시 머리가 좀 된 사람(배운사람)은 끌려다니면서 친일한 것이지 자발적으로 한 것은 없다.

김활란 박사도 잠을 못 이루며 지낸 세월을 지금 와서 친일파라고 모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다.

김세영 동창회 고문 얼마전 우월 김활란 상제정 소식을 듣고 내년이 탄생 100주년이 되는 때라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뜻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통신 이화방에 들렸다가 신문에 난 기사와 사설들 그리고 상 제정 반대의 글을 읽고 다소 놀랐다.

반대하는 사람은 김활란 박사가 친일을 하고도 참회하는 기색이 없었다.

창씨를 하여 일본 이름을 가졌다는 등 이른바 친일 활동을 근거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 지도층 인사들은 일제에 집중 공격을 받던 상황이고 김활란 박사도 일본이 시킨대로 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던 중 박사는 정신적, 심리적 고통으로 심한 안질에 걸리는데 그때 김활란 박사는 “남의 귀한 아들들을 전쟁터네 나라고 했으니 하늘이 가만 놔두실 리 없지”라며 참회를 했다고 한다.

. 총학생회장 강선영(특교·4)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김활란 상 자체에 대해 폐기 여부까지 논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현재 이 자리에서는 기본적으로 학생들의 입장을 밝히며 토론회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이후 10일(화) 토론회를 제안하며, 다시한번 김활란 상 제정·폐기 여부등에 대해 통의를 했으면 한다.

다음은 단대 학생회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논의를 거친것이다.

김활란 박사의 외적 업적은 상당하지만 그것이 많은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인정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즉 김활란 박사는 그 시대 지도자로서 징용, 정신대를 기꺼이 나가려하는 민중을 만들어 낼 정도로 발언의 영향력이 컸던 분인 것이다.

그러나 어떤 기본적 철학과 가치도 인간의 생명과 삶을 유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김활란 박사가 이룩한 많은 사람의 희생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대로 업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또 학교에서 얘기한 것처럼 21세기 발전에 있어서 이화여대의 이름이 세계에 널리 알려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현재 이화의 교육환경은 한 강의실에서 수백명이 함께 공부하는 등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므로 지금은 내실부터 다져야 할 때로 학생복지 시설 등 학내 시설에 우선적으로 투자해야 한다.

게다가 김활란 박사의 업적이 학내에서 재대로 평가과정을 거치지 못한 상황에서 김활란 박사의 이름을 걸고 이화의 이름이 대외적으로 선포될 수 있는가 의구심이 든다.

그 결과 우리는 우월 김활란 상의 폐기를 요구하며 역사적인 정당한 평가 후에 다시 김활란 상 자체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유정(행정·2) 조선일보에서 김활란 상을 제정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난 후 학교에서 총학생회 대자보도 봤다.

그러나 대자보의 내용이 학생회와 다수의 목소리만 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또 총학생회의 대자보는 상금 5000만원(미화 5만달러)의 출처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아 학생들이 21세기 발전 기금으로 아는 등 오해의 요소가 많았다.

그리고 우월 김활란 상이 여러 동창과 이화를 사랑하는 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으로 학생들이 그 제정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또 한편으로 김활란 박사가 만약 친일을 하지 않고 은둔했다면 우리나라에 어떤 이익이 되었을까를 생각해 볼때 오히려 친일한 것이 용감한 선택이라 생각한다.

유선희(신방·2)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다 하더라도 인간적인 평가와 객관적인 평가는 다르게 이뤄져야 한다.

또 학내에서조차 김활란 박사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않았으므로 평가를 한 이후 상 제정 여부를 논의하자. 조아라(외교·2) 김활란 박사의 업적이 많다는 이유로 친일을 했다는 모든 과실을 지나쳐선 안된다.

이상화 교수(철학과)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우월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기념 사업의 주제는 여성 교육과 21세기 발전을 위한 이화 점검을 주제로 한다.

그러므로 김활란 선생도 여성 지도자, 교유가로서 평가해야지 민족주의라는 이름으로 평가하는 남성들과는 다른 당파성을 가져야 한다.

이화인으로서, 여성으로서의 당파성을 가지고 김활란 박사를 평가해 우월상에 대한 찬반 입장을 정해야 한다.

김갑순(문과·35년 졸) 박사가 친일을 했더라도 매우 괴로워했다.

밤에 침실을 찾아와 서로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잠을 못자고 이리저리 뒤척거리던 박사의 모습이 아직도 생각난다.

즉 스스로 큰죄를 지었구나 하는 것을 자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장필화 교수(여성학과) 정신대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하려는 노력이 적극적으로 진행된 것은 90년대 이화에서 문제제기하면서 부터였다.

그후 정신대 문제가 세계적인 여론으로, 국제법으로 다뤄지게 됐다.

이러한 이화를 있게 한 분이 누구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정신대 문제를 해결해가는 바탕이 이화가 돼야하며 이화에서 여성 의식을 길러내야 한다.

이경숙 동창회 부회장 이상의 목적은 상을 받는 사람의 업적을 기리는 것과 동시에 모든 이화의 자세를 그런 방향으로 정립하자는데 있다고 생각한다.

동창회는 그 상의 제정과 모든 사업을 적극 지지하며 기금 모금에 모든 동창이 적극 참여하여 현재 많은 금액이 모금됐으며 지금도 많은 힘을 모으고 있다.

오늘의 이화를 있게 하신 스승의 한 부분의 허물만을 고집하다 우리 여성과 이화의 스승을 잃는 실수를 범하지 말자. 총학생회장 강선영(특교·4) 친일을 했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이 얼마나 민중들을 바라보고 있었는가를 문제삼는 것이다.

민중들의 삶을 유린한 채 그것을 반성했다는 말이 있었다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러한 부분을 제대로 평가해 어떻게 극복하고 역사적으로 해결할 것인지를 얘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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