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란 직업을 갖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나에게 맞는 일을 빨리 찾았다고 좋아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학보 제작에 발을 담기 전까지는 말이다.

학보에 바이라인을 내면서 나는 시들어가고 있었다. 애써 외면해왔던 내 안의 허점들이 신문으로 고스란히 프린트돼 나왔기 때문이다. 내 잘못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인정한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만은 않았다. 그리고 어떤 변명도 할 수 없고,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다는 외로움은 과히 소름끼칠 만한 것이었다.

취재처에서 오타를 발견하고 전화하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취재과정에서 저지른 잘못에 비하면. 그 뿐인가. 하루 종일 설문지를 들고 다녀도 정작 성과는 없는 날, 나는 내가 이렇게 소심하다는 사실에 사뭇 놀란다.

설문지를 돌리러 낯선 조형대와 체대를 하루에도 몇 번씩 왔다 갔다 할 때면, 나는 내 분에 못 이겨 혼자 흥분한다. 그러다가 어느 책 제목을 떠올리면서 ‘그러고 보며 나는 좋은 경험을 하고 있다’고 위로하기도 한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결국 신세한탄으로 끝나더라도.

고 3때, 도무지 오를 생각을 않는 모의고사 점수에 내가 점점 익숙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낀 적이 있었다. 그렇다할 열정도 의지도 내 안에는 없는 것만 같았다. 내가 두려운 건, 다시 한 번 그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다. 학보에 대한 열정은커녕, 해야 하니까 하고 있는 내 모습.

그러나 한용운은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고, 심지어 부끄러움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윤동주도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회피하지 않았다. 내가 윤동주보단 덜 소심하리라 믿으며 가슴속에 뜨거운 열정을 집어넣어본다.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걸 의심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금의 고민들이 날 크게 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무거운 짐 짓고서 닫는 사람은 기구한 발뿌리만 보지 말고 때로는 고개 들어 사방산천의 세상풍경 바라보시오.’ 김소월의 이 말 한마디가 내 고개를 다시 들게 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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