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rk University의 연구교수 Cynthia Enloe 인터뷰

'환한 미소를 가진 여자'. 페미니스트 권인숙씨의 에세이집 "선택"에서는 신시아 인로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현재 신시아 인로는 Clark University의 연구교수이자 여성학 프로그램의 학과장직을 맡고 있다. ‘호기심 많은 페미니스트’등의 저자이기도 하며, 페미니즘 분야의 저명 인사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그는 호기심과 활발함으로 가득 찬 사람이다.

그 세대의 많은 페미니스트들과 같이, 인로 또한 처음부터 페미니스트로서의 자신을 인식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가 대학에 다녔던 60년대에는 페미니즘에 관한 그 어떤 논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내 친구들 대부분은 졸업과 동시에 결혼을 했어요. 하지만 나는 결혼에는 관심이 없었죠. 나는 결혼이 구속이라 생각했고, 나의 다양한 기회를 제한할 것이라 여겼어요." 라 말하는 그는 "사실 나는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도 잘 몰랐어요."라고 덧붙였다.

친구들 처럼 가정에서 안정을 찾는 대신 그는 정치학자로서 학문적인 업적을 쌓아갔다.  Berkeley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Miami University의 정치학 부교수가 되었다.

70년대 말은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페미니즘의 새 시대가 열린 때였다. 그 즈음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에 몸담고 있는 많은 친구들을 사귀었다. 그리고 그녀는, '의심'하기 시작했다.

 "살아오면서 나는, 우연히도 많은 일들을 첫 번째로 행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라며 그는 지난 날을 회상했다. 고등학교 때 그녀는 학생회 사무실을 꾸려 나가는 첫 번째 여학생이었고, 버클리에서는 정치학과 조교 대표를 지낸 최초의 여성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누군가에게는 영광스러운 자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에게 이것은 전혀 축하할 만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성들이 전에는 이러한 일들을 왜 행하지 못했는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그녀로 하여금 좀 더 '현실적인 단계'에서 여성의 위치를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밖으로 나와 "미즈 매거진"이라는 잡지의 1호 구독을 신청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칭하기 시작했다.

그는 Clark University에 여성학과를 설치한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시작한 것이 그녀 자신도, 학과의 교수진도 아니라고 말한다.

"이 일은 명백하게 밑에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어느 날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학장실로 찾아와 여교수들과 샌드위치 점심을 함께 하자고 청하더군요." 이 학생들은 여성학 과목의 개설을 요구했다. 그는 당시를 이렇게 기억한다. "이 모든 것들이 정말 짜릿하고 활기찬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내가 페미니즘을 사랑하는 이유입니다. 페미니즘은 항상 짜릿함으로 가득 차 있거든요."

 그 이후 그녀는 Clark University의 "올해의 교수"로 3번이나 뽑혔고,  "교육과 연구에 뛰어난 최고의 교수"로 명명되었다.  현재까지 그녀는 페미니즘에 관한 강의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직업은 배우는 일-  학생들로부터,  여성 노동자들로부터,  문맹자들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배우는 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을 듣지 못한다고 해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세상을 항상 비판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고, 우리가 진정으로  '호기심 많은 페미니스트'가 돼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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