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내가 쓰게 된 기사는 이화아트센터 초대기획전 ‘telltale’에 관한 브리핑 기사다.
취재의 시작은 바로 직접 장소를 찾아가는 것. 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조형대를 방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낯선 분위기에 멈칫했다. 파스텔 톤의 분홍색 빛깔은 몽환적인 분위기였고, 빨래 비누로 인자한 부처상을 만들어 기존의 형식과 다르게 표현한 점, 텔레비전 화면에서 나오는 외국 노랫 소리들이 내가 생각했던 전시회 분위기와 너무 달랐다.

낯선 분위기 속에 난해한 작품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걸까?
추상적이고 분명하지 않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며 작품을 만든 작가의 의도를 추측해 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작품의 의미를 분명하게 알 수 없어, 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호기심이 생기면 끝까지 알아내려고 하는 성격때문인지 나는 한 시간동안 같은 작품을 계속 바라봤다. 이런 나를 이상하게 여겼던지 큐레이터가 다가와 말을 건넸다.

“작품을 참 좋아하시나봐요? 이렇게 오랫동안 감상하신 분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아, 이해가 잘 가지 않아서요. 이 작품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모르겠어요”
“작품 하나하나 작은 것에 집착하시지 마시고, 큰 주제인 ‘telltale’을 생각하면서 작품을 보세요”

큐레이터가 주고 간 팜플렛을 읽으면서 ‘telltale’에 관해 생각해 보았다. ‘telltale’은 뉴 미디어의 출현과 발전 이후 더욱 중요하게 다루어진 내러티브(narrative), 즉 이야기에 관한 전시회다.
‘telltale’기획전은 모더니즘 시기에 이데올로기적으로 치우쳤던 거대 담론적 주제보다 개인적인 서사, 작가의 개인적인 신화나 삶의 기억들을 표현한 것이다.

특히, 작가마다 다른 환경과 문화를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정신을 공유하는 내러티브를 이루는 것이 이 기획전의 최종목적이다.

다시 한번 호흡을 가다듬고 큰 주제를 생각하며, 작품들을 다시 바라봤다. 나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겼던 신미경 작가의 ‘Translation-toilet Project 2004 Soap’작품은 비누로 보살상을 표현한 것이다.

처음엔 그냥 생뚱맞게 ‘웬 비누로 된 보살상인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누의 강한 냄새와 보살상이 놓여질 법한 사찰의 내음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함을 만들어 오히려 하나의 일시적이고 선별적인 기억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작가에게 있어 보살상은 아마 비누와 같이 어렸을 때 부터 쉽게 다가가고 친숙한 존재였나 보다. 보살상이 전통 법당 같은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일반 사람들의 삶 속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득, 어느새 작품 하나하나를 보며 작가와 무언의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낮설었던 전시장은 어느새 나에게 친숙한 공간으로 바뀌었다.

현대미술이 난해하고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속에 갇혀서 그동안 멋진 작품들을 놓치며 살았던 것 같아 아쉬웠다.
작품을 보려고 노력하면 현대미술의 색다른 묘미를 알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난 새롭게 즐거운 놀이를 하나 찾아 냈다. 현대미술과 숨바꼭질하는 것.
추상적인 작품을 감상하면서, 이러한 것을 만든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작품 하나로 작가와 숨바꼭질하며 작품 뒤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 낼 것이다.

처음엔 의미를 정확하게 알기 어렵겠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찾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현대미술의 대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헛된 꿈이지만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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