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어딘지 몰라?”
“…”
늘 기억하지 못한다. 한번 다녀간 곳도 난 늘 처음가는 것 같다. 한번 만나본 사람들·사물들 난 처음 보는 것 같다. 처음엔 눈썰미가 없어서 그렇겠지, 나중엔 머리가 안좋아서 그런가보다, 그냥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들어 이런 나를 발견할때면 부끄러운 생각이 들곤한다.

난 너무나 이기적이었던 것이다.

나와 조금이라도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은 내 메모리에 절대로 남겨놓지 않는다. 넣으려고 애를 써도 튕겨 버린다. 난 안그런거 같은데 절대 부정하고 싶은데 내 머리는 제멋대로 판단한다. ‘이사람 기억해. 너한테 필요할지도 몰라’‘여기 꼭 봐 둬. 다시 와야 할 곳일지도 몰라’
길치라는 별명이 붙어버린 것, 건망증 대마왕이란 유치한 별명이 생긴 것, 어쩜 이기적인 내 머리의 수작인지도 모르겠다.

수첩 3개에 핸드폰 스케줄은 하루에도 열두번씩 징징거린다. 아주 사소한 것도 수첩에 적고 핸드폰에 메모하지 않으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고 싶은 것들은 꿈에서까지 나타나는데 해야할 일들은 내 두개골이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는가 보다. 문제는 이런 것들에 다른 사람들까지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중요하게 부탁받은 일, 꼭 기억해줘야 하는 일 홀랑 다 잊어버린다. 대출 까먹어서 친구 결석시킨것은 예사고 심부름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기 일쑤다.

이젠 좀 많이 신경쓰면서 살고싶다. 두개골도 우정민 소속인데 누구를 탓할수는 없는 일인 것 같다. ‘원래 난 기억하고 싶은것만 기억하니까’ 이런식의 변명! 오늘로 그만 둘란다. 메모하고 또 메모하고, 각인시키고 또 각인시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고, 외우고 또 외워서 절대 잊고 까먹는일 하지 않을 거다. 최소한 학보사 2년 동안은 나와 상관없는 세상일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이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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