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홍은동. 학교지 도착하려면 약 20~30분이 걸린다. 아침에 일어나 늑장부리는게 특기인 나는 언제나 허겁지겁 집을 나선다. 나는 학교 갈 때 주로 버스를 타는데, 내가 타는 버스는 오전에 사람이 많지 않다. 덕분에 난 앉고싶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특권을 누린다. 내가 즐겨 앉는 자리는 오른쪽 맨 뒷자리. 들고있던 파일과 가방을 옆에 아무렇게나 던져놓은 후, 어제 다운받은 신선한 노래들이 가득한 MP3의 이어폰을 꽂은 채 창 밖을 본다.

드디어 내가 가장 사랑해 마지않는 시간이 왔다. 신나는 힙합, 울적한 발라드 등등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창 밖에 스쳐가는 풍경을 보면서 상념에 잠기는 시간. 학교 갈 때마다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매번 다르다. 2층 건물인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3층이다. 속옷 가게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신발가게다. 뚱뚱한 아주머니가 나름대로는 예쁘게 차려입고 뒤뚱뒤뚱 걷는게 우습다.

그렇게 거리를 살피다가 문득 사색에 잠긴다. 내 성격이 어떤지 생각해보고 고쳐야할 점이 무엇인지도 하나하나 짚어본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정말 진실된 나 자신인지. 어제 들은 친구의 연애고민에 내가 제대로 된 상담은 해준건지. 가만히 버스에 앉아있으면 딱히 수를 쓰지 않아도 이 생각, 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수업은 벌써 시작되었을 시간이지만 버스 안에 있는 나는 절대 초조해하지 않는다. 안달하면서 발 동동 굴러봤자 어쩌겠는가. 어차피 버스에서 내려서 뛰어갈 수도, 앞을 가로막는 차들을 다 쓸어버릴 수도 없는 것을. 차라리 이 편안한 시간이 끝없이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그러나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나의 바쁜 일상은 시작된다. 학보사 기자를 시작하면서부터 내 생활은 두 배로 바빠졌다. 언제나 시간을 쪼개고 계산해야 한다. 이렇게 일상이 바빠지면서 버스 안에서 갖는 나만의 여유는 더욱 소중해졌다. 세상과 괴리돼 철저하게 나 자신에 대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교 수업에 과제·급한 취재까지 겹칠라치면 5분, 10분조차 너무나 귀한 시간이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버스 안에서는 글자 하나 안 볼 생각이다.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이라도 방해하지 못할 나만의 시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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