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마떼끄(3277-4710, 학생문화관 343호)

스티븐 프리어스/110min/미국/1988

  위험한 관계에서 우리는 자존심과 자기애의 정의에 관해 그리고 그것들의 성적 주체성과의 연관관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이 물음은 세 명의 인물들의 성적 주체성 유형에 관해 분석을 해보면서 시작됐다. 자기애와 자존심이 분리되어 존재할 수 있다는 것과 그렇다면 자기애를 자신에 가까이 두고 자존심을 형식적인 것이라고 정의하고 분석한 것이다. 
 
발몽과 메르퇴유 부인은 자기애는 적으나 자존심은 높은 인물들이었다. 이런 그들이기에 마음을 먼저 주는 것은 지는 것이라는 마치 게임과도 같은 상황이 성립된 것이다. 반면, 트뤼벨부인은 자기애가 높은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대해 깨닫고 난 후에는 열정을 쏟으며 정직하게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영화의 주요 세 인물들은 죽거나 좌절하지만 그런 비극적 결말이라고 모든 인물이 불행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가 옳다 그르다 판단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지를 관계 안에 표출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봤을 때, 자기애를 우위에 둔 성적주체성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경우 자기애에 발로한 의지적 행동의 결과가 어떠할지라도 트뤼벨부인은 바람직한 성적주체자이다.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진정 자신이 원하는 것에 다가가지도 못한 것은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행동일 것이다. 적어도 자기애를 갖고 그것을 따르는 것이 자존심에 자신을 가리고 따르는 것보다 후회는 적지 않을까. 


혹자가 영화의 원작 라클로의 소설<위험한 관계>를 평한 것으로 마무리 할까 한다.
‘소설<위험한 관계>는 세련된 유혹의 전략들로 이뤄어진 게임으로서의 사람에 대한 개념이 끝났음을 보여준다. 사랑이 계산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라는 유럽의 오랜 관념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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