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75기 수습기자를 선발하기 위한 면접이 있었다. 면접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새 ‘1년 전 저 자리에 내가 있었는데’란 생각이 들어  분이 묘해졌다.

1년 전 내가 학보사란 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막 차장이 됐던 선배들이, 얼마 후면 임기를 마치고 퇴임을 한다. 그리고 이젠 내가 그 선배들의 자리에 서게 된다. 나에게 그들의 자리는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이 커 보이는데, 얼마 후면 들어올 75기 후배들에게도 내 자리가 그렇게 보일까. 난 여전히 덤벙대고, 할 일 잘 까먹고, 기사 방향 잡는데 백 시간씩 걸리는데. 다음 학기부터 차장이라는 꼬리표를 단다는게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그동안 소위 ‘삽질’(이라 불리는 일)도 많이 했다. 한 취재원은 3일동안 인터뷰 약속을 열 두 번 바꾸더니 정작 약속한 날은 연락이 두절돼 애를 태웠다. 그 주 금요일이 시험이었는데 취재원과 연락이 되지 않아 시험 공부도 못하고 3일 동안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결국 만나기로 한 날이 시험보는 날로 정해져 시험 3시간 전에야 겨우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취재하러 가던 차 안에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프린트를 손에서 놓지 못한 채 ‘내가 왜 이래야 되나’란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얼마 전에는 총학 선거 개표 상황을 실시간 보도하기 위해 노트북을 빌려 놓고 바보같이 인터넷이 되는지 미리 확인하지 않아 고생을 했다. 개표하기 직전 그 사실을 알고, 선·후배, 기숙사 친구들에게 무선 인터넷이 되는지 물어보다 결국은 신촌 사는 친구한테 택시를 타고 가 노트북을 빌려 왔다. 빌리러 가던 중 택시 기사 아저씨는 연희동 길을 잘 모른다고, 택시비 만 원 짜리로 냈다고 버럭버럭 화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비가 주룩주룩 오던 날 취재가 끝나고 힘들어 하는 나를 위해 막차 시간까지 같이 기다려주고 수다 떨어주던 동기, 늘 덤벙대고 징징대기만 하는 내게 마감 후 선배가 보내준 ‘수고했다’는 한 마디 문자, 월요일 아침 학교 이곳저곳에서 학보를 보고 있는 이화인들은 내가 삽질을 하더라도 학보사라는 공간을 사랑하는 이유다.

머리 복잡한 일을 다 잊을 수 있는 현실 도피처이자, 치열한 현실인 지하 그 곳 학보사.
이제 반 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꾀도 많이 부리고 주위 사람들(특히 동기들;;)에게 짜증도 많이 내고 징징대기도 했다. 늘 그렇듯 지나고 나면 부끄럽고 후회되는 일이 더 많지만, 앞으로 남은 1년이라는 기간은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은 당당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마냥 아무것도 모르던 수습 시절처럼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신발끈을 다시 묶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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