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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여성들이 말을 타던 시절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조선 시대 여성에 대해 갖는 이미지는 남성에게 순종적이며 내외를 하는 정적인 모습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이미지가 모두 맞는 것은 아니다. 조선 전기 세종대에 성리학적 질서를 강화하는 취지에서 내외법이 시행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고 있는 사실일 것이다. 남녀간의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을 금하는 내외법의 논리에 의해, 여성은 사방이 뚫려있는 가마인 평교자를 이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대부분 조선 여성들이 이러한 법에 고분고분하게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집밖으로 놀러 나가기 위해 필요한 교통수단이었던 평교자가 금지되자 말을 타기 시작했다. 조선 전기의 여성은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조선 후기로 접어들면서 고려나 조선 전기의 여성과 다른, 흔히 상상하는 순종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인 것은 맞다. 열녀의 사례들로만 봐도 얼마나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순종적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역사의 기록의 이면을 간과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열녀는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한국 여성사에 대한 논의를 통해 열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마냥 열녀가 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갈등 없이 한 몸 희생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남편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었던 사회적 압박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쉽게 조선시대부터 여성들이 순종적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성들은 끊임없이 저항해 왔다. 조선 후기로 넘어가면서 여권이 많이 하락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때도 여성들은 남성의 부속물이 아닌 주체로서 갈등하는 존재였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회적 압박은 조선시대에 끝난 것이 아니다. 최근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비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여성을 대상으로 한 수위 높은 농담에 각종 방송의 하차설까지 나돌았지만, 장동민을 옹호하며 비슷한 농담을 서슴지 않는 남성들의 댓글 등을 통해서 그러한 여성비하적인 사고를 장동민 혼자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의 권위주의적 시각과 여성에게 순결을 요구하는 문화가 여전히 팽배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뉴스도 있었다. 아주 미미한 수준이지만 남성의 육아휴직이 늘고 있다는 기사다. 여성만이 가사와 육아를 맡아야 하는 주체가 아니라 남성도 중요한 주체라는 인식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그 수준은 미미하지만, 육아휴직이라는 개념이 없던 사회에서부터 남성도 육아휴직을 쓰는 사회로의 변화는 여성들의 저항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남자로 태어난 것이 스펙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여자가 취업과 직장 생활 등 사회 전체에서 불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여자인 것도 꽤 괜찮다. 멋있다. 사실 이런 글을 쓰는 것도 한국여성사 수업을 듣고 쓰는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필자는 모두가 쉽게 순종적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시대 여성들도 말을 탔다는 것을 함께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만연한 남성위주의 사고와 갈등이 생겨도 여성들이 좌절하지 않기를 바랐다.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는 도전을 멈추지 않았으면 한다. 어쩌면 더 먼 미래에는 대한민국 여성들의 노력으로 여권이 다시 회복됐다고 기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학생칼럼 | 노지현(광고홍보·12) | 2015-05-04 13:34

'금융권을 생생하게 느껴 볼 수 있는 활동', '마케팅 실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기회'. 대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의 대외 활동 모집 요강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구다. 뿐만 아니다. 입사지원시 우대, 소정의 활동비 지원, 실무진과 접할 수 있는 기회. 취업난과 스펙 과열에 시달리는 대학생들을 현혹하는 달콤한 말이 아닐 수 없다. 말 그대로 라면 스펙과 어학 점수를 채우느라 바쁜 대학생들이 진로에 대한 작은 탐색이자 한 줄의 경력으로써 참여하기에 적합한 활동으로 보이는 문구다. 하지만 대학교 3학년이 된 지금에야 알았다. 모집 요강과 현실은 달랐다. 생각보다 많은 대학생들이 대외 활동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토록 공들인 자기소개서로 선발된들, 만족감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의 입장은 어떤지 모르나, 대외 활동을 직접 경험하는 학생들의 시각에서 소정의 활동비로 많은 활동을 요구하는 기업의 대외 활동 모집은 '보수 없이 쓸 수 있는 아르바이트생 구인'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물론 소정의 활동비는 주어진다. 문제는 정말 소정이라는 것이다. 대부분 활동비가 지급되는 대외 활동은 팀 단위로 활동이 이루어지는데, 팀 미션 수행을 위한 단 한 번의 모임으로 활동비는 금방 바닥을 드러낸다. 최소한 팀활동을 위한 회의를 한 번 하는데 에도 장소가 필요한데 가장 만만한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진행 될 경우, 인원 수 대로 음료만 주문해도 드는 돈은 만만치 않다. 여기에 밥 한 끼 먹게 되면, 그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소정의 활동비는 정말 활동을 하는데 필요한 최저 수준의 비용이다. 물질적 보상 대신 좋은 경험은 얻을 수 있을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특정 분야를 체험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던 초반의 기대와는 달리, 대부분의 대외 활동은 SNS에 기업을 홍보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 주 업무이다. 대외 활동 지원서에 블로그 일 방문 자수, SNS 팔로워의 수를 적는 이유이기도 하다. 기업이 전달하는 이슈 사항을 개인 SNS에 올리는 것이 과연 그들이 말하는 업계 체험인지 모르겠다. 구색 맞추기 식으로 현직자의 특강 일정을 짧게나마 넣는 곳들은 그나마 양반으로 보인다. 이제는 정말 금융권 체험, 마케팅 실전 체험을 바라는 지원자들도 없다. 해당 기업에 대한 정보는 빠삭해 질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대학생들이 원하는 직무에 대한 이해인가. 물론 모든 기업의 대외 활동이 이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경험했고 내 친구들이 경험한 많은 활동들이 그랬다. 단 몇 건의 사례가 있더라도 문제가 된다면 개선되어야만 한다. 특히 취업 시장의 영원한 을이라는 대학생과 그에 비해 갑이 될 수밖에 없는 기업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부조리는 기업 측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개선하지 않으면 끝없이 되풀이 될 것이다. SNS에 홍보성 게시물을 올려 줄 사람을 찾는 것이라면, 저런 달콤한 문구는 쓰지 않길 바란다. 인턴사원만큼의 일을 시킬 거라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주길 바란다. 실제로 한 친구가 했던 대외활동은 거의 인턴사원 수준의 업무였다. 외국어 특기자로 선발되어 밤낮없이 번역일을 하고, 기업과 전혀 관련 없는 노가다성 활동을 했다. 활동비를 못 받아도, 차라리 업계에 대한 무언가를 배워갈 수 있는 일이었다면 억울하지 않았을 것 이라고 했다. 친구는 자신의 어학능력으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자 한 것이 아니다. 이러니 무보수 아르바이트생 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 없다. 우리는 취업을 위해 인턴십을, 인턴십을 위해 대외활동부터 시작한다. 다음 단계를 위한 수단으로써, 부당하다고 외치면서도 닥치는 대로 대외활동을 하는 우리가 문제인 것일까. 이런 점을 잘 이용하는 기업이 문제인 것일까. 문제가 누구에게 있든, ‘을’은 문제를 해결할 도리가 없다. 기업이 스스로 이 문화를 고쳐 주기를 바란다.

학생칼럼 | 박소영(광고홍보·13) | 2015-04-06 19:41

몇 주 전, 강의 시간에 에 실린 기사를 봤다. ‘2014 취업 전쟁 보고서’라는 헤드라인의 기사였다. 스펙 좋은 서울대 문과생들이 취업을 못 하고 있다. 연세대도 고려대도 그렇다. 늘 보던 내용의 기사였지만 볼 때마다 착잡해지는 내용이었다. 강의가 끝난 뒤 후배는 우울해진다 말했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그 기사에 등장한 학생들의 스펙과 겹치는 스펙이 단 하나도 없었다. 2007년 경제학자 우석훈과 사회운동가 박권일이 쓴 출간 이후, 언론은 청년세대를 부정적으로 조명하고 나섰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삼포세대. 졸업 후 실업자 또는 신용불량자가 된다며 청년실신. 취업이 안돼 졸업을 계속 미룬다고 NG(No Graduation)족. 알바로 학자금을 충당한다고 알부자족. 장기간 미취업자라고 장미족. 31세까지 취업을 못하면 길이 막힌다고 삼일절. 이젠 이웃나라 일본의 사토리세대를 빌려와 달관세대라고도 한다. 이쯤 되면 작명소 수준이다. 그뿐인가. 용어에 맞는 케이스를 어떻게든 찾아낸다. 케이스가 없으면 아는 대학생을 앉혀놓고 준비해둔 대본을 읽게 한다. 흥신소와 연기까지도 손을 댄다. 미디어 이론에는 ‘프레이밍 이론’이라는 게 있다. 언론은 세상을 보는 ‘프레임’을 제공한다. 대중들은 그 프레임으로 세상을 본다. 즉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은 대중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등을 형성할 수 있다. 청년세대를 지칭하는 용어들 또한 언론이 설정한 프레임이다.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청년세대조차 그 프레임으로 자신을 본다. 고3때와 같다. 수험생 생활은 당연히 힘들고 어렵지만 사람들이 주는 시선은 더 힘들다. ‘힘들지?’라는 물음은 ‘힘들어야지’라는 강요다. 365일 24시간 내내 힘들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괴했다. 지금도다. 취업만 준비한다 치면 ‘요즘 바쁘지?’, ‘놀 시간도 없지?’ 같은 말들을 한다. 바쁨과 피곤과 힘듦을 강요한다. 끊임없이 불안하고 우울해야 한다. 더 괴로워야한다. 청년세대조차 잠시라도 즐거운 자신을 마주할까 두렵다. 경쟁에서 도태되는 건 아닌가라는 우려가 불길처럼 번진다. 프레임에서 나갈 길을 잃는다. 청년세대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거짓은 아니다. 기업들은 돈이 없다며 임금을 동결하고 채용 인원을 줄인다. 취업 때문에 졸업을 유예한 사람도 많다. 취업을 못한 사람이 대졸자의 절반이라는 통계도 나온다. 그러나 언론은 취업한 절반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미 우울한 청년세대라는 프레임을 설정했다. 거기에 맞는 사람들을 골라 혹은 거기에 맞게끔 들이맞춰 보도할 뿐이다. 주위를 둘러봐라. 청년세대가 포기한다는 연애는 나만 빼고 다 한다. 난임 문제로 병원을 찾는 환자는 한 해 20만명이 넘는다.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출산을 원하고 있다는 말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서울대 문과생들은 웬만한 대기업에 가면 쉽게 만날 수 있다. 포기와 달관을, 우울과 불안을 강요받고 있다. 교과서에나 나오던 비판적 사고를 동원해 프레임 브레이크를 해야만 한다. 달관이라는 말로 청년세대를 미화시키는 그들에게 분노해야 한다. 스펙 좋은 서울대생이 떨어졌다는 말은 누군가 붙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다. 설혹 저 모든 프레임에 부합한다 해도 자괴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그대들의 잘못이 아니다. 그대들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좋아하는 뮤지션 선우정아의 2집 의 수록곡인 를 빌려 말한다. 저 앞에 그대를 기다리는 함정에 겁먹지 마라. 그대가 가장 믿어야 할 것은 그들의 눈이 아닌 그대의 눈이다. 세상 가장 소중한 건 그들의 생각이 아닌 그대의 생각이다. 위로가 아니다. 프레임 밖 진실이다.

학생칼럼 | 조은혜(광고홍보·11) | 2015-03-30 19:08

봄이다. 나는 이쯤 되면 항상 심한 감기를 앓는다. 딱히 어디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 항상 3월이 되면 감기를 종류별로 달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봄을 청춘의 계절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시작과 하늘을 수놓는 새하얀 벚꽃이 피어나는 시기. 만물이 성장하고 봄바람을 맞으며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한 시기. 하지만 나에게 있어 봄은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을 품은 잔인한 계절일 뿐이다. 군인이셨던 아버지 덕분에 내게 만남과 헤어짐은 그냥 일상 같은 개념이었다. 일 년에 한 번씩 전학을 다니며 배운 점은, 끝이 있으면 새로운 시작도 있다는 것. 덕분에 나는 헤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새로운 만남에 기대를 걸지도 않았다. 그런 삶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더 곁에 있는 것을 향한 소중함을 깨우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2011년 3월11일,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완전히 뒤바뀌게 되었다. 일본으로 전속을 가셨던 아버지 덕분에 나는 일본에서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따뜻한 봄바람이 도쿄 시내를 감싸는, 여느 봄날과도 같은 평화로운 하루였다. 비극은 점심시간 이후에 시작되었다. 갑자기 시작되는 진동에 모두 여느 때와 같이 가볍게 지나가는 여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땅은 지칠 기세를 보이지 않고 계속 흔들렸고 어느새 우리들은 공포를 직감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긴 5분이었다. 그 5분 동안 나는 죽음이라는 공포를 떨쳐낼 수 없었다. 가까스로 진동이 멎고, 서로 안전모를 쓰며 건물 밖으로 나오는 동안에도 공포는 계속되었다. 나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 과연 우리 가족은 안전할지. 전화도 안 되는 상황에서 나는 아무런 정보도 없이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깨달았다. 당연시하게 내 옆에서 나를 지켜주던 우리 부모님도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구나.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세계는 이토록 쉽게 부서질 수 있는 것이었구나. 나는 철저히 세상에서 혼자가 될 수 있겠구나. 다행이도 세 시간이 지난 후, 엄마는 나를 찾으러 버선발로 학교로 달려오셨다. 엄마를 본 순간, 나는 엄마를 끌어안고 아기처럼 학교가 떠나가도록 펑펑 울 수밖에 없었다. 그 울음은 내 곁에 다시 돌아와서 고맙다는 하나의 인사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만남과 헤어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내가 한없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나는 자만했던 것이다. 내가 헤어짐에 익숙할 리가 없는데. 그 후로 내겐 만남과 헤어짐이 익숙하지 않다. 2011년 3월 11일. 일본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에도 나는 수많은 이별을 겪었다. 하지만 이제는 옛날처럼 사람과의 이별을 물 흘러 보내듯이 미련 없이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헤어지더라도 너는 행복하라고 이렇게 생각하고 싶다. 이것저것 재는 걸 떠나 당신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생각 그 하나만으로도 나는 가슴이 아파 눈물을 흘릴 걸아니까. 나는 결코 만남과 헤어짐이 아무렇지도 않은 게 아니라 익숙했을 뿐이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얼마나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될 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분명 누군가는 나에게 새로 다가오고, 또 다른 누군가는 내 곁을 떠나가겠지.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그 인연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싶다. 그리고 그 인연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달아 후회하는 일도 없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래서 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도 오늘 말하고 싶다. 지금, 여기,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학생칼럼 | 정윤조(국제·13) | 2015-03-23 19:38

“커뮤니케이션은 우리가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 혹은 세상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받고, 해석하는 과정(process)이다.” 미국 출신의 석학,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는 소통을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스스로 내린 커뮤니케이션의 정의에서 과정이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강조했다. 소통의 과정에서 학생을 빠트린 채 학내 주요사안을 결정한 학교는 학생들에게 혼란을, 어쩌면 당연한 결과를 가져다주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학과 개편으로 학교 전체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둘러싸였다. 국제사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필자의 친구는 방학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오니 소속 단과대학이 바뀌었다며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슬슬 졸업을 생각할 때가 됐는데 이렇듯 갑작스럽게 교육과정에 변화가 생기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불만은 학생 개인에 그치지 않고 있다. 신산업융합대학에 소속될 각 학과생회 대표 역시 “각 학과 대표마저 평의원회 회의 직전에 알았다”며 사전 논의가 있어야했다는 의견을 제기하고 있다. 가장 높은 단계의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학제를 개편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학과 명칭 변경, 신설 같은 변동은 1년에 한두 번 꼴로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새로운 단대가 마련된 것은 2007년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 이후 8년만이다. 문제는 이렇듯 큰 사안을 학생들과의 소통도 거의 하지 않은 채로 추진했다는 것이다. 의견 충돌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 이번에도 학교 측은 적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학생들에게 좋은 취지를 설명하기 위한 ‘융합교육의 필요성’,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을 고민한 결과’ 답변 등은 충분히 납득할 만 했다. 그러나 수요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학과별로 신청을 받았다’는 답변의 중심에는 학생이 없었다. 정말 아쉬운 대목은 갑작스런 통보 외에도 다른 대안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특히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이 시행됐던 2007년과 비교했을 때 드러난다. 그 당시, 학교는 본격적인 시행 약 2년 전인 2005년에 학부대학 운영을 골자로 하는 가안을 발표했다. 또한 가안이 발표된 당해 연도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단대, 학과별로 학생과 교직원 간담회와 학생대상 기획처 설명회 등을 여러 차례 열었다. 물론 당시에도 여러 학생들의 반발이 일었지만 논의를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더 길었고 기획처와 학생이 직접 대화할 수 있는 장도 마련됐다. 취임 직후 총장과의 열린 토론, 전체 교수회의 등으로 자칭·타칭 ‘파격’을 보였던 최경희 총장의 행보와 지금 학교의 분위기는 사뭇 대조적이다. 임기 초기에 이런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구성원과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싶다는 그의 의도와 진정성마저 의심스럽게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학교가 보여줬던 노력을 다시 믿고 싶다. 이번 일을 통해 학교가 진정한 소통이 무엇인지 다시 재고해 봤으면 한다. 파격도 좋다. 그러나 기본부터 지켜 달라.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지켜달라는 것이다. 과정이 없는 커뮤니케이션은 반쪽짜리만도 못하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소통을 위해서는 학생의 역할도 중요함을 절대 잊지 말자. 의견교류의 장을 만들고 이를 원활하게 하는 원동력은 소통의 주체인 학생의 자발적인 참여에서 나온다. 변화는 항상 쟁론을 수반한다. 기존의 것을 지키고자하는 의견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나뉘게 돼있기 때문이다. 그 변화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지는 서로 다른 의견간의 소통 과정에 달려있다. 학교와 학생 간의 원만한 소통을 통해 ‘변화가 시작되는 곳’ 이화여대에서 또 다른 좋은 변화를 이뤄내길 기대한다.

학생칼럼 | 김지현(언론·11) | 2015-03-16 12:14

나는 문득 학교 가는 길에 하늘이 참 푸르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본 하늘이었다. 집에 나와서 하늘을 보기 전까지 내 시선은 언제나 바닥을 향했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학교 오는 지하철 안, 내 맞은 편 사람이 무슨 옷을 입었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나를 스친 수많은 사람과 익숙한 길거리의 분주함을 기억하지 못했다. 사실 기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보지 못해서 떠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얼마가 지난 후에야 깨달았다. 언젠가부터 고개를 들어 주변을 응시하는 순간이 줄어들었다. 주변을 바라보는 대신 손안에 들린 작은 휴대폰에만 집중했다. 어느 날 하늘을 보기 전까지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나를 스쳐 가는 무엇들을 흘려만 보냈다. 여러분은 그런 적이 없었는지 궁금하다. 아마도 꽤 많은 사람이 익숙했던 거리를 둘러볼 때 낯섦을 느끼거나 정말 오랜만에 올려다보는 하늘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 고 하더라도 앞을 보지 않고 걷다가 사람들과 부딪히는 경험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주변 일상에 무관심해졌다. 대신에 우리의 눈과 귀는 핸드폰에 매료되었다. 아침을 시작하는 시작부터 밤을 맞이하는 끝까지 많은 시간을 휴대폰과 함께한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은 무심한 일상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을 더듬어 보면 간직하고 싶은 추억 속에도 휴대폰은 언제나 존재한다. 그날의 한 순간을, 한 장면을 추억하는 것이 오로지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그리고는 의심해봐야 한다. 그것이 정말 그 날을 기억하고 있는지 말이다. 나는 예전이라면 지금보다 더 많은 감각으로 그날을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추억하고 싶었던 그 날의 바람의 냄새와 거리의 소음들, 눈에 담았던 다소 왜곡된 감각들로 더 아련하게 기억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점점 순수한 기억을 잃고 있다. 전부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기억하고 싶은 그 순간 나는 카메라에 비친 화면으로 순간을 저장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억 일부분은 차가운 기계의 저장공간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니다. 나는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변색되는 머릿속에 맴도는 기억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다가 사람들은 기억을 외부화시킨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 문구가 딱지금의 우리 같다.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기억을 외부화시킨다는 말이 내게는 좋게 들리지 않는다. 나는 소리와 눈 그리고 내게 닿았던 느낌과 냄새로 기억하는 것이 훨씬 좋다. 이 느낌이 기억을 더 소중하게 여기고 계속 상기시켜야 할 것만 같은 책임감마저 들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정말 담고 싶은 순간에는 주변을 돌아보고, 깊이 숨을 들이마셔 보려 한다. 기록하는 것보다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여러분도 한 번쯤은 정말 소중할 것 같은 순간이 다가온다면 순간을 저장하기보다는 시간과 공간을 담아보기를 바란다. 어느 날 희미하게 더듬어 그날의 시간을 추억해보기를, 기억을 잃지 않기를 바라며 떠올리려고 노력해보는 경험을 다시 한 번 느껴보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공유했던 머릿속 기억의 퍼즐이 얼마나 변했는지 어떻게 더 미화시켰는지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겠다. 네가 어떤 모습으로 웃었는지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며, 무엇을 닮았었는지 우리의 이야기는 어땠는지 맞추어보는 재미가 정말 ‘기억하는 것’ 같지 않을까?

학생칼럼 | 김희선(방송영상·11) | 2014-12-01 2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