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존중 ②] 치열한 사회가 고립·은둔 만들어 ··· "도움 필요할 때 부를 한 사람이라도"
청년을 고립과 은둔으로 모는 사회, 여러주체가 청년과 연대해야
편집자주|고립·은둔 청년 수가 50만을 넘었다. 이들은 정신적 고립과 사회적 단절로 인해 자살 고위험군에 속한다. 기회와 연습의 장을 충분히 제공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청년들은 마음껏 넘어질 기회조차 없다. 실효성 있는 정책과 제도, 그 리고 무엇보다 사회적 연대와 공감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번 기획을 통해 본지는 하나의 사회적 주체로 고립·은둔 청년을 바라보고, 이들을 공동체와 연결하는 징검다리가 되고자 한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는 개인 차원을 넘어 사회 구조에 그 원인이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실패가 수용받지 못하는 풍조가 확산하며, 청년들은 고립·은둔으로 내몰리고 있다.
실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는 인식이 만연해진 현실에서 청년들은 점차 단절을 선택한다. 그들은 자신이 사회로부터 외면 당했다고 느끼고, 이는 곧 청년들에게 ‘희망없음’을 의미한다. 연세대 송인한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고립·은둔 청년 문제가 대두되는 핵심 이슈로 ‘희망없음’을 말했다. 송 교수는 “한국 사회는 청년에게 극심한 경쟁 속에서도 높은 수준의 성과를 거 둘 것을 기대하지만, 실패를 받아들이는 문화는 취약하다”고 꼬집었다. ‘희망없음’ 은 청년들에게 우울과 심리적인 어려움을 만들고, 이는 자살 위험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2024년에는 1만4588명이 자살했다. 1시간에 1.66명이 사망한 것으로, 이제는 단순한 개인의 비극을 넘어 국가적 차원에서 대응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전진숙 국회의원은 자살을 ‘사회재난’으로 정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 밝혔다. 서원대 권혜림 교수(경찰행정학과)는 ‘고립·은둔 청년의 자살 및 자해 생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권혜림, 2025)에서 “청년층의 반복된 실패는 일정 부분 구조적 제약에 기인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청년들이 취업, 결혼 등 특정 과업의 성취를 중심으로 평가받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사회 구조적 요인이 청년들을 고립·은둔으로 밀어 넣는 것이다. 권 교수는 “(생애주기에 맞는) 과업 수행이 늦어질 경우 무능한 성인이라고 보는 전통적 시각은 청년의 삶을 모두 똑같은 경로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며 비판했다. 엄격한 사회적 시계가 청년을 낙오자로 규정하는 데 일조한다는 의미이다.
청년들의 사회적 관계가 단절되는 배경으로 △사회·경제적 불안정 △우울 불안 등 정신건강 요인 △치열한 한국 사회의 문화적 분위기가 지적된다. 우리대학 김선영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청년층에서 우울과 자살이 늘고 있는 이유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 환경과 발달적 특성이 겹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청년기는 자기 정체성을 찾고 독립을 시도하는 시기지만 불안정한 취업, 치솟는 주거비, 경쟁적인 사회구조로 인해 이러한 발달 과업 성취가 좌절되면서 쉽게 우울 및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짚었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현실도 문제다. 이런 고립감과 외로움은 청년에게 심리적 부담이자 압박으로 다가온다. 전 의원은 “청년들이 더 이상 혼자서 고립의 무게를 짊어지지 않도록 사회적 지지망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제도적 지원이 잘 설계돼 있더라도 사회의 연대가 뒤따르지 않으면 고립·은둔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본지의 ‘청년 고립·은둔 경험과 사회적 원인에 대한 설문’에 따르면, 응답자 60%가 고립·은둔 청년 발생 원인을 사회구조와 개인적 요인이 맞물려 나타나는 복합적인 문제로 봤다. 사회적 압박이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답변도 43.5%로 뒤를 이었다. 한 응답자 는 “개인의 특성이 전혀 작용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이) 구조적 요인을 개인적 요인으로 착각하기도 한다”며 청년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는 고립· 은둔을 택하는 이유를 납작하게 바라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문은 8월26일~1일 일주일간 20대 청년 85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청년들이 “나를 지지해 주는 사회가 없다’’고 느낀다면,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송 교수는 “놓치지 않아야 하는 가치를 청년들이 함께 공유하고, 서로를 도울 심리적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당장 구조가 변화하지 않더라도 서로를 돌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고립·은둔 청년을 위한 정책을 만든다는 명목으로 예산을 무분별하게 확충하고, 실효성 없는 대책만 내밀어서는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송 교수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복지국가’로 향해야 한다며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복지 정신 없 이 돈만 쓰는 건 진짜 복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이 주최하고 인터넷신문윤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생명존중 기사공모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상담전화 ☎109 또는 SNS상담 마들랜(마음을 들어주는 랜선친구)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 본 기사는 자살예방 보도준칙 4.0을 준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