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10곳 중 9곳이 중고신입 선호…‘스펙을 위한 스펙’ 요구받는 취업준비
기업들 “경쟁력 없지 않아…경력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된 경험”
채용시장의 중고신입 선호 경향이 확산되며 경력이 없는 취업준비생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기업은 효율성을 명목으로 경력자를 우대하지만, 취업준비생은 첫 경력을 어디서 쌓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을 토로한다.
중고신입 채용 선호는 일부 취업준비생의 기우가 아니다. 채용 공고 사이트 사람인(saramin.co.kr)은 기업 10곳 중 9곳이 중고신입을 선호한다고 발표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5 하반기 채용 트렌드 조사의 채용시장 키워드 1위 역시 ‘신입보다 경력’이다. 이러한 기업의 경력직 선호는 실제 채용시장에도 반영됐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올해 주요대기업 121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에서도 지난해 채용된 대졸 신입 10명 중 3명이 관련 경력을 가진 중고신입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 대비 2.3%p 증가한 수치다.
학생들은 기업의 중고신입 선호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정수련(사회·23)씨는 “인턴이나 서포터즈 공고만 봐도 경력 선호가 뚜렷하다”라며, 이미 일상에서 이런 경향을 체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스펙의 종류가 끝없이 늘어나면서 목표 기업에 가기 위해서는 인턴을 준비해야 하고, 인턴을 위해서는 또 다른 스펙을 쌓아야 하는 ‘스펙을 위한 스펙’이 요구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이 책임져야 할 직무 역량 교육이 시장으로 넘어가며 “그 부담이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된다”라고 토로했다.
현장에서도 실무 경험을 중시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ㄱ(식생공·20)씨는 동종 업계에서 8개월간 정규직으로 근무한 뒤 올해 하반기 공개 채용(공채)에 합격했다. 그는 기업들이 실무 경험 자체에 높은 가치를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중고신입 선호가 취업난을 악화시킨다고 느낀다며, “기업들이 모두 경험 있는 신입을 원한다면 진짜 신입은 어디에서 경험을 쌓으라는 것이냐”라는 푸념이 나올 정도라고 지적했다. 신입 공채에서 조차 실무 경험자를 선호하는 흐름은 다소 모순적이라고 덧붙였다. ㄴ(사학·21)씨는 체험형 인턴 면접 당시를 회상하며 “면접장에 나온 모두가 인턴 경험을 최소 한 번 이상 보유하고 있었고, 인턴조차 사실상 경력자를 우대한다는 분위기를 느꼈다”라고 말했다. 그는 2025년 하반기 취업 준비 시장에서 일부 기업들이 ‘경력 1년 미만’을 신입 자격 요건으로 제시한 사례가 있었다며, 이런 방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ㄱ씨와 ㄴ씨는 일신상의 이유로 익명을 요청했다.
중고신입 선호가 확산된 배경으로는 △정기 공채에서 수시 채용으로의 전환 △채용 연령 제한 폐지 △높아진 이직률로 인한 신입 교육 비용 부담 등이 언급됐다. 우리대학 인재개발원(인개원)도 지금의 채용시장 흐름은 “정기 공채에서 직무 중심의 수시 채용으로 전환된 것과 관련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기업은 신입 교육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입사 직후 바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최동원 교수(경영학부)는 한국 기업은 오랫동안 연공서열 체계와 신입 입사 후 정년 근속 구조를 유지해 왔지만, 채용 연령 제한이 폐지되며 만 30세 이상인 사람이 신입으로 취업이 가능해진 것이 변화를 불러왔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이직을 통한 커리어 이동이 일반화됨에 따라 채용이 신중해졌고, ‘가능한 한 적게 뽑는 방식’으로 변화했다”라고 분석했다. 이직이 흔한 일이 된 채용시장에서 기업이 교육한 신입이 빠르게 퇴사하는 것은 큰 부담 요소로 작용한다는 뜻이다. 우리대학 출신 기업 관계자 ㄷ씨는 “신입 한 명을 채용할 때 회사가 투자해야 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며, “한국은 근로기준법상 인원 정리도 쉽지 않아, 선발 과정에서 더 조심스러울 수밖 에 없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중고신입 확대가 취업난을 직접적으로 가중시키는 현상은 아니라고 말한다. 김상준 교수(경영학부)는 중고신입이 위협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결국 ‘대기업 취업’이라는 특정한 경로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업이 원하는 인재와 지원자 역량 사이의 부조화가 심화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기업의 브랜드만 보고 지원하기보다는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상 및 직무 기준과 나의 역량이 얼마나 부합하는지 먼저 파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신입 경쟁력의 핵심이 공식적인 경력 유무보다는 ‘일관적이고 집중적인 경험’에 있다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경험을 단순 나열이 아닌 ‘나만의 서사’로 재구성하는능력이 중요하다며, 과외 같은 경험도 리더십과 멘토링 경험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ㄷ씨는 관심 분야를 정하고, 이에 맞춰 학교 수업을 수강하고, 자격증과 프로젝트 경험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업 관계자 ㄹ씨 역시 “목표 기업이 아니더라도 유사 직무를 경험할 수 있다면 단기 계약직이나 아르바이트도 충분히 의미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