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순 없어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쉽사리 답하지 못할 것이다.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닌데, 행복하다고 말하기엔 애매한, 나는 주로 이런 상태이기 때문이다.
유다빈밴드의 곡 ‘GET LUCKY!’(2025)에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순 없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뮤직 페스티벌에서 우연히 듣게 된 곡이었는데, 이 가사가 너무나도 내게 와닿았다. 이전에 유행한 “소확행”이라는 말은 소소한 일에서라도 행복을 찾아야 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면, 이 가사는 아예 시각을 달리해 내게 “굳이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있어?”라고 물어봐 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할 이유를 찾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행복하지 않을 이유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사람들마다 행복한 상태를 정의하는 기준이나 정도가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에게 “행복해?”라고 물어봤을 때 “행복하지 않아, 난 불행해”라고 곧바로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렇게 서로의 행복을 확인하는 일조차 흔하지 않아서, 생각해 보면 내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그걸 직접적으로 표현할 일이 많지 않다. 누군가가 나에게 영어로 “How are you?“라고 인사하면 항상 보통이라는 말로 넘어가곤 했는데, 언젠가부터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생각하기를 잊어버린 건지, 깊게 생각해 봐도 오늘은 그냥 그렇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나를 발견했다. 이런 답답함이 나를 위해서라도 내 행복을 찾아서 떠나보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롤 프로게이머 ‘구마유시’라는 선수를 정말 좋아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조용하다 못해 소심한 축에 속했고, 활발하고 사교성 좋은 친구들을 보면서 저런 사람이 돼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세상에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람들이 나아가야 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에 끌리게 되는 탓일까, 나와는 다르게 세상을 마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빛나 보이고 어느새 좋아하게 되곤 한다.
구마유시는 올해로 같은 팀에서 연속 세 번의 국제전 우승을 이뤄냈고, 그래서 막연하게 팀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라면 무조건 팀에 남았을 것이라서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계속 몸담고 있던 곳의 익숙함과, 좋아하는 동료들과의 추억이 존재하는 곳을 벗어나 가본 적이 없는 길로 가는 일은 나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닿고 나니, 바로 이런 모습이 내가 이 선수를 좋아하게 된 이유가 아니었나 싶었다.
그래서 이 선수를 좇아가고 싶어졌다. 나는 평생을 나 자신이 집순이라고 확신하며 살아왔지만, 어느새부터 그런 삶과 나 자신에 조금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도 집에서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과 여러 명의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전자를 고르고 싶은 나지만, 왜 그런지 처음으로 생각해 봤다.
생각해 보면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 성향의 기저에는 두려움이 깔려 있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당연하게도 성공한다는 보장이 있는 일은 없으므로, 자신이 없어서 여러 핑계를 대며 포기하곤 했다. 지금도 똑같이 새로운 것을 도전하는 것이 두렵지만, 일단 해 보고 나서 후회하자는 생각으로 저지르고 나면 생각보다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행복감이 엄청나다. 별 기대 없이 시작한 일에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했고, 자신이 없어서 배우려고 시작한 일에서 오히려 성장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당연히 성공적으로 해내지 못한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는 것도 아니었고, 두려움에 떨며 시작한 일도 막상 겪어 보면 내가 만들어낸 그림자는 실체가 없었다.
소소하지만 동아리를 하면서 같은 과 친구들이 조금 생겼고, 영어에 정말 자신이 없었지만 영어 수업을 수강하며 후배와의 교류가 생기기도 했고, 학교에서 운동 프로그램을 수강하며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을 만나 진로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듣게 되기도 했다. 모두 시작하기 전에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지는 않을지, 영어를 너무 못해서 수업에서 부끄러운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예전에는 운동을 빠르게 배웠었는데 지금은 한참 뒤처지지는 않을지 등 걱정만 태산이었다. 실제로 영어 발표를 하다 실수를 해서 부끄러운 적도 있었고, 어른이 돼 드러난 나의 실체는 운동을 그렇게 빠르게 배우는 편도 아니었다. 어떤 동아리에서는 친구를 한 명도 사귀지 못해서 활동이 진행될수록 가기 싫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그렇지만 절대 그 경험들이 후회되지는 않는다. 해 보지 않았으면 나중에 아쉬워할 때가 분명히 왔을 것이고, 얻어가는 것이 크지 않았을 거라며 자기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순환은 나를 더 현재에 안주하게 해 내 활동 반경을 좁혀갔을 테다. 하지만 나는 이미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즐거움을 알게 됐고 이것저것 소소한 것들을 새로 해 보는 과정이 재미있다.
나와 비슷하거나 나보다 더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는 것을 보며 용기를 얻고, 새로운 경험에서 오는 즐거움을 알게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