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연(緣)] 다름을 인정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

2025-11-16     김오송 다인ABA행동지원센터 및 하다행동연구소 대표

 

김오송(영문·00년졸) 다인ABA행동지원센터 및 하다행동연구소 대표

 

국제공인행동분석가(BCBA)로서 자폐 및 발달장애 아동을 대상으로 행동 중재 및 교육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다인ABA행동지원센터 및 하다행동연구소 대표이자 국 립정신건강센터 슈퍼바이저로 활동하며, 사이버대학에 출강 중이다.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글을 준비하며, 2003년 미국에서 석사 졸업 무렵 참여한 학회의 잡페어(Job Fair) 인터뷰에서의 질문이 기억에 떠올랐다.

“당신이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이 우리가 함께 일하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칠 것 같은가요”라는 질문이었고, 나는 대략 “우리는 응용행동분석(ABA)을 통해 학습에 어려움이 있는 특별한 사람들(people with special needs)을 교육하고 그들과 소통하는 일을 합니다. 내가 무엇을 하는지만 명확히 안다면 팀과 소통하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이렇게 미국의 첫 직장이 시작되었고, 2025년 오늘까지 이 일을 한국에서 계속하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 학교, 지역사회의 여러 사람들과 팀을 이루어 좋은 지원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 스스로도 계획하지 않았던 성장을 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가 가진 고민을 서로 ‘잘 소통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야 했다. 나와 매우 다른 가치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 합의하고 결론을 만들어 실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를 보지 않고 상대방만 바라봐서는 진행이 어렵다. 나의 가치는 어떠한가, 나는 무엇을 의미 있게 여기는가에 대한 성찰을 강제로 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사람들은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깊이 배우고 받아들인다.

나는 나를 성장시키는 내 일에 대해 깊은 감사와 애정을 갖고 있다. 나를 성장시키는 두 가지 키워드는 ‘다름에 대한 인정’과 ‘의미 있는 삶’이다. 발달장애인이 가진 ‘매우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면 좋은 지원을 시작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특수교육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삶에 해당하는 원칙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특히 아이를 양육할 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 원리가 많은 노력으로 실천해야 함을 문득문득 느낀다. 내가 원하는 대로 누군가 행동해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라는 것은 잊기 쉬운 진리이다.

내가 일을 하며 배운 또 다른 경험은 우리 삶은 ‘의미’를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발달장애인의 삶을 가까이에서 마주할수록 ‘무엇이 의미 있는 삶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미국에서 일하던 시절 만난 아이는 조산아로 태어나 시각장애를 갖고 있었고, 음식도 씹지 못해 복부에 튜브를 꽂고 있었다. 치료팀은 그 아이가 걷고, 손으로 탐색하고, 입으로 음식을 섭취할 수 있도록 치료 지원을 하며 노력했다. 그 아이는 스스로 걷기 싫어서, 숟가락을 잡기 싫어서 등의 이유로 자기 얼굴을 때리는 자해 행동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어차피 아이의 발달이 매우 느린데 “왜 그렇게까지 힘들게 하냐”며, “그냥 원하는대로 다 해주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팀은 작은 변화들을 꾸준히 모니터하며,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영역을 넓혀주기 위해 노력했고, 아이는 조금씩 의사소통용 손목시계를 차고, 시각장애인용 지팡이와 작은 점심 도시락 가방을 들고 야외 식탁까지 걸어가는 연습을 반복했다. 작은 손으로 가방의 지퍼를 여는 동작 하나하나를 연습했고, 마침내 아이는 스스로 그 과정들을 해내며 미소 짓는 모습이 늘어났다.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후 ABA 서비스를 종료했다.

그리고 약 2년 후, 아이의 부고를 전해 들었다. 태생적으로 심장이 약했던 아이였기에, 언제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미국의 장례식장은 고인이 떠나는 모습을 보며 작별인사를 한다. 가지런히 누워 있는 작은 아이를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이 아이에게 해준 일들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그 아이의 짧은 삶에 고단함을 더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 팀이 함께 내린 결론은 이것이었다. 그 아이가 지팡이를 들고 걷고, 도시락 지퍼를 스스로 열고, 야외 식탁으로 나아가며 미소 지었던 그 시간들은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고 삶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누리고, 자기 속도로 길을 만들며 떠난 것이다.

삶의 길은 누구나 다르고, 종착지도 다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과 그 속에서 작은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일 것이다. 인생이 쉽지 않은 암벽 등반의 여정과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등반의 길에서 모든 한 걸음은 의미와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