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지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새로운" 인문학 ··· 제20회 김옥길 기념강좌 성료

인문학 위기 속 대학의 역할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다시 읽다

2025-11-16     김나영 기자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교수가 포스트 휴머니즘의 주요 주제인 인문학에 관해 설명하며, ‘인문학은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인류의 근본적인 가치’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새로운 인문학은 소프트한 학문이 아니라 가장 정교한 학문이며, 쉽고 어려운 문제가 아닌 단순함과 미묘함의 차이다. (로지 브라이도티)

우리대학 대표 학술 강좌인 ‘김옥길 기념강좌’에서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 (Utrecht University)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명예 석좌교수가 ‘대전환의 시대 “새로운” 인문학, 비평과 긍정’을 주제로 강연했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 담론을 선도하는 페미니스트 철학자다. 그는 지정토론에서 나온 젠더 이분법으로 회귀하려는 현세대에 관한 질문에 대해 “Who queers, who gays, forever and ever and ever?”라고 답변을 마무리했고, 관중석에서 뜨거운 박수가 쏟아졌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인문학은 인간이 삶을 살게 하고 오늘날의 발전을 이끈 기술의 기틀이 되는 학문이라고 말한다. 인문학은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근본적 가치이며, 인류 의 목소리라 덧붙였다. 그는 “인문학을 핵심 가치로 인식하는 동시에 버려도 될 괴짜로 취급”하며 학문을 무시하는 외부 세력을 비판했다. 이처럼 인문학은 늘 위기 속에 머무른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것으로, 위기를 겪는 건 새롭지 않다”고 말했다. 인문학은 자신에 대한 의문을 던지며 시작됐다. 그는 실제로 인문학의 여러 담론이 모멘텀을 얻으며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화인문과학원 김애령 원장은 “일상과 교육 현장에 깊이 침투한 AI 기술이 대학의 인문학 교육에 피할 수 없는 도전으로 다가오며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했다”며 이 강연은 브라이도티 교수가 제안한 긍정을 실천과 함께 모색하는 성찰과 토론의 출발점이라 말했다.

지정토론 당시 신상규 교수의 질문에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교수는 “혐오와 같은 급진적인 문화들은 억압되어야 한다.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은 소수자가 꿈꿔온 것이며, 그것이 인문학을 되살리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답했다. 진유경 사진기자

브라이도티 교수의 강연 후에는 김남시 교수(조형예술학부)와 신상규 교수(이화인문과학원)의 지정토론, 청중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우리대학은 한국의 포스트휴먼 연구를 사실상 가장 먼저 도입했다. 신 교수는 “우리대학은 늘 첫걸음을 내딛는 학교로, 포스트휴먼 연구 또한 우리가 선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정토론에서는 학생들의 AI 사용에 따른 대학의 역할을 포스트휴먼적 시각으로 고찰했다. 김 교수는 “앞으로 인문학 지식의 방향성이 공유재가 되는 것이라면, 대학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질문했다. 이에 브라이도티 교수는 기술이 학습과 글쓰기에 깊이 개입하는 시대를 맞이함에 따라 교육 방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웃음기 어린 말투로 학생들이 백과사전이 아닌 챗지피티를 사용하는 걸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학생들은 수사학, 논리학, 윤리학 같은 인문학의 기초를 바탕으로 올바른 질문을 해야 하고 사람 간의 연결을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연결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비판적 인문학과 고전 페미니즘을 포함해 많은 학문에 기반을 두고 있다. 지난 5월 우리대학에서는 아트하우스 모모의 한국퀴어영화제 대관 불허 통보와 총학생회의 퀴어퍼레이드 참여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다. 김 교수는 “과거 비판적 인문학의 사회적 성과로 나타난 대학 사회의 젠더 다양성 수용이 활발히 논의됐으나 현세대에서는 방향성이 달라져 회의감이 든다”고 말했다. 브라이도티 교수는 인문학을 기반으로 하 는 페미니즘, 젠더, 퀴어 연구가 계속해서 이어져야 하며, “페미니즘은 어떤 영역에도 예외를 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한 것이고 모든 세대는 이를 재창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의 책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에는 자신이 페미니즘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며 이는 “젊은 세대에게 보내는 사랑의 편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책을 통해 세대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랐다.

김옥길 기념강좌는 여성 교육과 사회 정의 실현이라는 김옥길 전 총장의 뜻을 기리는 강좌로, 올해 20회차를 맞이했다. 6일 오후4시 ECC 이삼봉홀에서 열렸고 학생, 연구자, 동창 약 300명이 참여했다.

7일 오후2시에는 국제교육관 LG컨벤션홀에서는 강좌와 연계된 대학원생 콜로키움 ‘포스트휴먼 지도 그리기: 변화를 힘으로, 가능성을 상상하다’가 진행됐다. 콜로키움은 △예술, 물질: 감각적 매개를 통한 포 스트휴먼 지식 △페미니즘×포스트휴먼: 인지 자본주의 시대의 한국 여성 문학 △방법으로서의 브라이도티: 하이데거, 데카르트, 장자를 중심으로 △포스트휴먼 페미니즘으로 읽는 기계·생명·젠더 발표로 구성됐다. 끝으로는 브라이도티 교수와 라운드 테이블이 진행됐다.

라운드 테이블에서 전 세계적인 극우화, 외국인 혐오, 반페미니즘 정서 심화 양상을 묻는 말에 브라이도티 교수는 모든 의제를 논의의 장으로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가 작동하지 않고 젊은 세대가 투표하지 않은 채 컴퓨터에 갇혀있다”며 포퓰리스트들의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시도를 막고 건설적인 대화를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