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매주 신문을 만드는 학보사 기자가 할 말은 아니지만 신문을 읽기 싫어지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비단 신문뿐만 아니라 인스타그램, 유튜브, X(구 트위터) 같은 소셜미디어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모든 것’의 화면을 켤 때마다 안 좋은 소식만 보여 핸드폰을 꺼버리고 회피하기도 했고,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현실이 거지 같아서 세상이 완전히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다.
여성혐오를 범행 동기로 인정한 판결이 역사에 새겨진 지 1년이 지났다. 그동안 ‘묻지 마 범죄’로 뭉뚱그려졌던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의 이유를 분명히 한 순간이었다. 지난한 노력 끝에 우리 사회는 묵인해 온 진실과 방임했던 현실을 목도했다. 사회적 소수자를 겨냥한 혐오 범죄임을 국가가 인정했지만, 그 이후로 무엇이 바뀌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지난 2일에는 한 유튜버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히며 2018년 미투(#MeToo) 운동이 #METOO_2025로 재점화됐다. 이들은 고백에 ‘저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였다. 흩어져 있던 개인들은 용기 있게 상처를 꺼내 보이며 역설적으로 피해자로 남기를 거부했다. 피해를 당했지만 영원히 피해자가 아니며,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들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연대와 응원이 이어지는 동시에 댓글 창에서는 2차 가해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중립 기어 박는다’, ‘증거는 있냐’, ‘왜 바로 신고하지 않았느냐’, 심지어는 ‘여자도 군대 가든가’라는 내용과 관련 없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영상을 봤다면 도저히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다.
2023년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성폭력 안전실태조사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중 한 번이라도 경찰에 신고한 적이 있는 사람은 전체 응답자 중 2.6%에 그친다. 지원기관의 도움을 받은 응답자는 0.6%로 더 저조하다.
피해자임을 밝힐 수 없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이런 결과를 초래했다. ‘노출이 심한 옷차림 때문에 성폭력이 일어난다’에 10명 중 4명이, ‘피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성폭력을 당했다면 피해자에게도 책임이 있다’에 10명 중 3명이 ‘그렇다’고 답했다. 정말 그럴까? 피해자는 피해를 당했을 뿐이다. 피해를 당한 사실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고 억울한데 이들에게 탓을 돌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고,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돌리는 미비한 성인지 감수성과 사회 전반에 퍼져있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오로지 개인의 힘으로 바꾸기는 쉽지 않다. 성평등가족부를 비롯한 정부부처가 먼저 나서서 제도적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 그런 국가적 책임을 다할 의무가 있는 여성가족부는 윤석열 정권을 지나며 무력화됐다. 확대와 개편을 통해 출범한 성평등가족부는 여성들이 우려할 수밖에 없는 여지를 남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여성에 대한 구조적 성차별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공식 석상에서 남성이 느끼는 차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한국여성연구원 김미선 연구교수는 여성의 성차별 문제는 공식적으로 언급되지 않고, 계속해서 남성 ‘역차별’만 반복적으로, 공식적인 자리에서 언급되는 상황을 ‘담론의 정치’라고 설명하며,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의 발언이 가지는 파급력이 크다고 짚었다.
이 자리를 빌려, 높으신 분들께 부탁하고 싶다. ‘젠더 갈등’, ‘남녀 갈등’이라는 말로 문제의 본질을 희석하는 짓은 이제 그만하셨으면 한다. 갈등은 집단 간 대등한 위치가 전제될 때만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구조적 차별이 심각하다는 사실은 명징하다. 2023년 기준 한국 성별 임금 격차는 29.3%로 OECD 회원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고, 모든 연령대에서 여성 성범죄 피해자가 남성보다 훨씬 많다는 사실을 경찰청 통계가 뒷받침하고 있다. 한 사람의 여성이라도 안전하지 않다면 우리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는 문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故이용마 기자는 “언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지만, 동시에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대변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여성의 이야기를 쓰고 기록해야 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우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잊지 않기 위해 오늘도 노트북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