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야 사회생활"...아르바이트 '직장 내 괴롭힘' 문제 제기 어려워

신고해도 괴롭힘 법적 인정은 어려워 구조적 허점 존재하는 조사 방식까지

2025-11-16     한재유 기자

#1 지난 6월 식당 홀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지수현(영문·24)씨에게 아르바이트 가는 길은 고역이다. 사장이나 선배 직원이 지친 감정을 푸는 경우가 빈번하고, 가벼운 경우 '야' 호칭부터 욕설이 섞인 폭언을 듣는 게 일상이기 때문이다. 사장은 맡은 업무 외 잡일을 시키고 실수를 하면 손님들 앞에서 수치심을 줬고, CCTV를 돌려보다 직원의 실수를 발견하면 경위서를 작성해 단체 채팅방에 게시하도록 하는 규칙을 만들었다. 계속되는 압박에 지씨는 "내 잘못이니까 교육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 놓였을 때 "내가 좀 더 나이 있는 남자였어도 같은 대우를 받았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2 약 9개월간 피시방에서 근무한 ㄱ씨는 '경력이 낮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표적이 됐다. 선배 남직원이 근무 도중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설거지를 미뤄 업무가 가중됐다. 그는 경력이 많거나 남성인 직원과 근무할 때는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었다. 이후 매니저가 된 해당 남직원은 ㄱ씨에게만 사소한 일로 지적을 반복했다. 다른 사람의 근무 태도는 지적하지 않으면서 사업장에서 막내였던 ㄱ씨에게만 "이것도 못하냐" 식의 비난을 일삼았다. ㄱ씨는 일하던 곳에서 일을 계속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어 결국 퇴사했다. ㄱ씨는 신원 특정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전화 주문을 받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의 모습.  출처=이대학보 DB

대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폭언이나 부당한 지시 등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을 겪지만, 권력관계와 불이익 등으로 인해 문제 제기를 망설인다. 이런 분위기 속에선 실질적으로 문제 제기를 위한 증거 수집도 어려워 직장 내 괴롭힘으로 법적 인정을 받기 어렵다. 이들은 사실상 법적 구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대학생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사측의 압박이나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으로 괴롭힘 신고를 망설이게 된다. 지씨는 "근무하는 내내 녹음기를 켜고 있을 수도 없어 미묘한 괴롭힘은 증거를 채집하는 게 어렵다"며, "근무지의 상하관계가 엄격해 그만두겠다는 의사를 밝히는 것조차 힘든 분위기"라고 말했다. 박귀천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시간제나 단기 근로자도 당연히 신고 및 보호 절차를 이용할 수 있지만 고용 불안정 상태에서 현실적으로 신고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혜선 노무사는 "노동청은 신원 보호 의무가 있으며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라 괴롭힘으로 피해를 본 근로자에 대한 불이익 조치는 금지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근로기준법은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지만, 대학생 신분의 노동자들은 신고 이후 생길 수 있는 사측의 보복에 신고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문제 제기를 어렵게 만드는 데에는 사회적 분위기도 작용한다. ㄱ씨는 "괴롭힘이나 부당함을 참는 게 사회생활이라고 배워왔다"며 "법을 운운하면 'MZ 같다'는 반응이 돌아올 것 같았다"고 호소했다. 피해자를 '예민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분위기 속에서 침묵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제76조의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직장 내 괴롭힘 인정 요건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지위 및 관계의 우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어 △피해자에게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 악화를 초래한 경우다. '우위'란 인원 수, 연령, 학벌, 근속연수, 직장 내 영향력 등 상대방이 저항하거나 거절하기 어려울 가능성이 높은 상태를 말한다. 박 교수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는 것과 업무상 적정 범위를 넘는다고 해석하는 기준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 노무사는 "앞선 두 사례 모두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될 소지가 있지만 객관적 증거 확보와 조사의 어려움에 의해 법적 인정이 될 가능성이 낮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 절차에도 허점이 존재한다. 현행 절차는 직장 내 괴롭힘 신고가 접수되면 사측에 조사 의무가 발생하는 구조다. 이때 조사의 주체는 사업주다. 노동청은 △조사 △피해자 보고 △가해자 조치 등의 조사 절차를 사업주가 법에 맞게 진행했는지 감독한다. 최 노무사는 "이 절차를 진행하는 조사 주체, 즉 사업주가 가해자이거나 그와 가까운 사람인 경우, 증거나 목격자 부족 등의 사유로 직장 내 괴롭힘이 맞더라도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 경우 노동청은 사업주가 조사 의무를 다했으므로 내부 조사를 존중해 추가적 조사 등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4년 직장 내 괴롭힘 신고 건수 약 1만2000건 중 괴롭힘으로 인정받은 것은 약 1500건에 불과했다. 인정 건 중에서도 1021건은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처벌이 아닌 개선 지도 처리에 그쳤다.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된다 해도 현실적으로 피해자에게 돌아오는 실익은 크지 않다. 현재 근로기준법상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 발생 사실을 인지하고도 조사를 실시하지 않았거나, 사업주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인 경우에는 과태료 부과 처분에 머물기 때문이다. 이 경우 피해자에 대한 직접적인 보상 의무는 없다. 이에 오슬기 노무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노동자'로서 동등한 법적 보호 대상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사용자에게 업무 환경 개선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확한 조사와 조치를 통해 직장 내 괴롭힘의 반복을 막기 위함이다.

괴롭힘을 법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객관적 증거 확보가 핵심이다. 심리적·정서적 괴롭힘의 경우 △상담 기록 △피해 일지 작성 △팀 내 배제 정황 기록 △동료 진술서 확보, 신체적 괴롭힘은 △CCTV 영상 △상해 진단서 △현장 목격자 진술 확보 등이 도움된다. 피해자는 지자체와 시민단체의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 거주자 또는 서울 소재 사업장에 종사하는 월 평균 임금 300만 원 이하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시 노무사 노동권리보호관 선임을 무료로 지원하고 있다. 최 노무사는 "청년유니온이나 지자체 노동상담센터에 무료 상담 및 동행 등을 요청해 전문가의 상담을 받아볼 것을 권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