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편집국] 과정을 잊은 세상에서, 모든 과정을 기록한다는 것

2025-11-16     강예본 기자

안녕하세요, 독자 여러분. 이대학보입니다.

차가워진 공기 속에서 연말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낍니다. 하루가 조금씩 짧아지고 교정의 나무들은 잎을 털어내며 겨울을 준비합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밤을 지새우며 원고를 붙잡고 고뇌하던 날들, 인터뷰 뒤의 여운, 함께 웃고 울던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또 한 해와 한 계절이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음을 실감합니다.

지난 주부터 다음 총학생회 건설을 위한 선거운동이 시작됐습니다. 많은 벗들이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권리를 온전히 실현하길 바랍니다. 이대학보 역시 가장 옳은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투표는 공동체를 향한 책임이자 미래를 선택하는 행위입니다. 넬슨 만델라는 “민주주의는 참여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했습니다. 한 표의 힘을 믿고, 주어진 권리를 책임감 있게 행사하는 선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 호에서는 대학의 학습 현장에서 인공 지능(AI)이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인간적인 가치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며 기획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지금, 우리는 학문과 글쓰기의 영역에서도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인간이 해야 할 일과 인간만이 남길 수 있는 흔적이 무엇인지 묻고자 했습니다.

기술은 놀라울 만큼 발전했고 인공지능은 정교하게 문장을 만들어냅니다. 그럴수록 ‘글을 쓴다’는 행위의 의미를 더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문장은 정보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과 시간, 그리고 세계가 스며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한 줄 안에 자신이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자 할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글을 대신 써주는 시대에도 사람의 문장에는 여전히 특별한 힘이 있습니다. 글에는 손끝의 온기와 생각의 무게, 세상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깃듭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여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고유한 창조의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기술의 발전은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질문을 던집니다. 인공지능이 빠르게 성장하는 시대에 우리는 ‘누가 더 빨리, 잘 쓰는가’ 가 아니라 ‘누가 더 깊이 있게 쓰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인간의 글은 느릴 수 있지만 각자만의 속도 속에는 공감과 망설임, 그리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이 효율을 위해 존재한다면 글은 의미를 위해 존재합니다. 결국 기계가 대신 쓸 수 없는 문장은 ‘느리게 쓰는 사람의 문장’일 것입니다. 그 느림 속에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힘이, 그리고 글이 시 대를 넘어 살아남는 이유가 있습니다. 글을 쓰는 모든 이가 기술의 편리함을 빌리되 그 너머에서 인간의 의미를 새기는 일을 계속하기를 바랍니다.

이대학보는 언제나 사람 중심의 저널리즘을 지향해왔습니다. 단순히 사건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인간의 이야기와 의미를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학보사에서의 시간 동안 저는 ‘기사’가 아니라 ‘기록’을 써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기록은 누군가의 하루를 비추고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했던 순간들이 됐습니다. 작지만 단단한 문장 하나가 불편함을 고발해 변화를 이끌었고 잊힌 목소리를 되살렸습니다. 학보사에서 경험한 모든 순간들을 통해 글은 비록 세상을 크게 바꾸지 못하더라도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다리가 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이제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새로운 기자들을 맞이할 준비를 합니다. 앞으로의 이대학보도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하되 사람의 온기를 잃지 않는 글을 써 내려가길 바랍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남기는 문장이 인간의 의미를 지켜내는 기록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제가 글을 쓰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입니다.

이화에서의 시간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쳐줬습니다. 수없이 부딪히고 넘어지면서도 조금씩 단단해졌습니다. 언제나 곁에서 함께 고민하고 웃어준 동료들과 선배들 덕분에 끝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이제 초록의 청춘을 이화에 내려두고 학보사와 학교를 떠나려 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배운 글쓰기를 사랑하는 마음과 사람에 대한 믿음은 오래도록 제 안에 남을 것입니다. 각자의 길을 걸어가는 모든 이화의 청춘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나는 그날, 우리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환하게 웃고 있기를 바랍니다. 이화에서 만났던 모두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냅니다.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