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재학생 문학상] 우수상 수필 수상작, '목소리를 잃어버린 날에'

2025-11-09     전수현{통계·24)

목소리를 잃어버린 날에

 

어린 시절, 나는 종종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다. 체구가 작아 줄에 서도 앞사람 어깨에 가려졌고, 사진을 찍으면 얼굴이 반쯤 가려졌다. 운동장에 나가 뛰어놀아도 목소리는 다른 아이들 웃음소리에 묻혔다.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어도 이름을 잘못 불러주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가만히 목을 긁듯, '큼, 큼' 소리를 냈다.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는, 소심한 아이의 최선의 행동이었다. 그렇게 작은 소리가 나의 오래된 습관이 되었다. 나는 이 소리를 내며 내가 아직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곤 했다. 소리라고 하기에도 작은 기척, 그저 목을 한 번 고르는 정도의 움직임일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것이 내 존재를 가장 뚜렷하게 증명해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태권도장 차에 갇혔던 사건은 이 습관이 굳어진 계기가 되었다. 관장님이 차에서 내리실 때, 나는 너무 작아 시야에 들어오지 못했다. 말만 했더라면 금세 해결될 일이었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몇십 분을 차 안에서 땀을 흘리며 앉아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관장님이 돌아와 갇혀 있던 나를 발견하셨다. 관장님은 “말을 하지…” 하며 한숨을 쉬셨다. 나도 내가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는지 몰랐고, 성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알지 못한다. 이유는 모르지만 아마 그 순간의 무력함이 지금의 습관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 뒤로 나는 종종 의식하지 못한 채 헛기침을 하곤 했다. 그리고 그 습관은 가족의 힘겨운 시간 속에서 더 깊게 뿌리내렸다. 중학교 2학년, 아빠가 엄마 몰래 집을 담보로 큰 빚을 졌다. 그걸로도 모자라 빚의 이자를 위한 빚을, 끊임없이 졌다. 빚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불어났고, 매달 이자로만 700만 원이라는 큰돈이 나갔다. 엄마는 원래 하던 방과 후 강사 일에 추가로 설거지와 고깃집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아빠는 배달 일을 시작했다. 5인 가족이 타던 큰 차를 팔고 겨우 두 명이 낑겨탈 수 있는 차를 빌렸다. 차를 팔기 위해 필요한 계약금 300만원이 없어서 엄마는 나와 언니에게 각각 200만원, 100만원의 돈을 빌렸다.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빌리는 이 상황이, 부모님 용돈으로 자취하고 여행을 간다는 친구들의 상황과 비교되어 더 비참하고 속상했다. ‘빚을 지다’라는 말이 익숙해졌을 땐, 그 말이 나를 수식하는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되어있었다. “원망스러워요. 힘들어요.” 그런 말들을 하고 싶을 때면 나는 '큼, 큼' 하고 더 자주 목을 가다듬고 헛기침을 했다. 집은 여전히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를 직접 말하는 사람은 없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으로만 안다. 나는 그 속에서 자주 목이 메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목소리를 내야 할까 생각했지만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삼켜진 말들은 목구멍에 얹힌 채 헛기침으로만 흘러나왔다. '우리가족 힘내자. 이겨낼 수 있어.' “큼, 큼.” 누구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나 자신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로 버텼다. 가끔은 헛기침이 마치 글쓰기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길게 이어진 문장은 아니고, 뚜렷한 뜻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분명히 남는 흔적. 한 번 흘러가면 사라지는 듯해도, 몸에는 무언가 남는다. 글도 그렇다. 누군가 읽지 않더라도, 내가 썼다는 사실이 내 안에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종이에 글자를 남기듯, 공기 속에 작은 기침을 남긴다. 헛기침이 때로는 부끄러운 버릇처럼 여겨질 때도 있었다. 사람들 앞에서 괜히 소리를 낸 것 같아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곱씹어 보니, 그것은 내 안에서 유일하게 자라난 신호였다. 울음처럼 요란하지 않고, 웃음처럼 가볍지도 않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를 지탱하는 중립의 소리였다. 요즘은 종종 상상해 본다. 만약 내가 태권도장 차 안에서 그 한마디를 했더라면 어땠을까. “관장님, 저 여기 있어요.”라고 분명히 말했더라면, 지금의 나는 조금 달라졌을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여전히 작고, 여전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아이였을 테니까. 다만 차이가 있다면, 이제는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글로 남기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지 못했던 순간들이 쌓여서, 오늘의 내가 되었다. 소리를 내지 못했던 날들이 기록이 되어 글로 번졌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지 않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은 알 수 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고. '큼, 큼.' 헛기침은 여전히 내 하루 곳곳에 스며 있다. 아침의 공기에도, 저녁의 그림자에도, 책상 위 흩어진 노트에도. 그 소리가 크지 않아도 괜찮다. 아무도 듣지 못해도 괜찮다. 나는 오늘도 그 소리를 내며 버티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말이 적다. 모임에 가도 앞자리에 서기보다 뒤쪽에 앉는다. 남들이 활기차게 이야기를 이어갈 때, 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짓는 편이다.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멈칫할 때마다, 목이 먼저 반응한다. 큼, 큼. 그 소리가 어색한 빈틈을 메우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내가 그 자리에 있음을 나 스스로는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순간을 말없이 지나칠 것이다. 말해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하고 싶던 문장이 목구멍에서 막힐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또다시 헛기침을 할 것이다. 그 소리는 여전히 크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가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어쩌면 언젠가는 그 소리가 변할지도 모른다. 헛기침이 아닌 목소리로, 나의 생각을 전하는 말로. 그러나 그것이 당장 오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나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오늘도 헛기침을 한다. 그 소리는 작은 파문처럼 공기 속에 번지고, 금세 사라진다. 하지만 나에겐 남는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가장 조용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