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우리가 여기에 있다

2025-11-09     최영서 기자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시나요?’

페미니즘 리부트 10주년을 맞아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화인 534명에게 물었던 수많은 질문 중 하나. 나는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는가. 간단한 질문임에도 대답하기란 어려웠다. 지난날을 돌아봤을 때 그다지 적극적으로 활동한 기억은 없기 때문이다. 성평등하지 않은 한국 사회를 일상의 차원에서 비판한 경험은 있지만, 여성단체에 가입하거나 집회 혹은 시위에 나가지는 않았다. 탈코르셋이나 4B 같은 여성운동을 실천해 본 경험도 없다. 함께 분노했던 개인적 경험만으로 페미니스트임을 자칭할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스스로 고찰한 적 있는가. 이번 취재는 머릿속 질문들의 해답을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귀하가 생각하는 페미니즘은 무엇인지 적어주세요.’

취재기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일은 사람들과 만나 질문을 던지는 인터뷰다. 다른 이들의 다양한 의견을 들으면서, 흐릿하게만 존재했던 주관을 뚜렷하고 명확하게 재정립할 수 있는 시간이라 그렇다. 설문조사는 이화에 534개의 페미니즘이 있다는 것을 보였다. ‘여성이 더 이상 약자가 아닌 세상’, ‘궁극적인 여성 해방과 자유를 향한 무브먼트’, ‘모든 사람이 자신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신념’, ‘약자성의 멸종을 위해 행동하자는 이념.’ 다채로운 의견을 경청하며 찾아낸 나의 페미니즘은 ‘여성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평등을 이야기하는 사상’이다.

어떤 이는 나의 정의가 틀렸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페미니스트가 퀴어를, 장애인을, 혹은 외국인을 챙겨야 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여성들이 몇 초에 한 명씩 죽어 나가는 사회이므로,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사회에게 지금은 여성 의제를 강력히 요구할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단일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성지향성 혹은 성정체성으로 차별받는 여성이, 장애를 가졌기에 이동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여성이, 외국에서 이주해 사회적 편견에 부딪치는 여성이 우리 곁에 존재한다. 이들은 겹겹이 쌓인 다층의 차별을 마주한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구조적 차별만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수는 얼마나 될까. 여러 계급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순수한 여성이란 존재할 수 있는가. 여성들 사이에서도 복잡스러운 사회적 기제가 작용하기 때문에 나는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페미니즘을 지향한다.

전문가들은 현시점 한국 페미니즘의 한계를 ‘분열’로 정의했다. 탈코르셋을 실천하지 않는 이에게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비난하고, 기혼여성을 가부장제의 부역자라며 조롱한다. 백래시라는 강력한 반동을 마주한 현실에서 페미니스트들이 분열한다면, 우리는 자연스레 여성운동의 동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한 교수님께서 ‘모든 운동에는 배제가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사회적 약자를 집단 밖으로 내몰면서 이상적인 페미니스트만을 부르짖는 페미니즘은 지속되기 어렵다. 개인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주체와 연대하는 페미니즘이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에 대항할 수 있다.

모든 페미니스트(Feminist)에게 활동가(Activist)로 살아가기를 요구할 수는 없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꿈꾸고, 이를 위해 사회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사회를 읽어내면서 그 속에 존재하는 여성혐오가 잘못됐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페미니스트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일상에서 조용히 페미니즘을 실천하는 이들도 나에게는 모두 페미니스트다.

10년 전에 비해 페미니스트들이 권리 증진을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발화 자체가 축소됐다는 의견이 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여성들에게 ‘페미’라고 물으며 사상을 검증하는 행위가 일상화됐고, 오히려 ‘역차별’이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아무리 여성운동사의 분기점마다 백래시가 따라왔다고 해도 이번 백래시는 더욱 강력하다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취재를 통해 20대 여성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으며 다시 시작할 수 있겠다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이렇게 많은 여성이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한국 사회의 성차별에 분노한다. 시위나 집회에 활발히 나가는 이들도 있고, 온라인으로 청원에 참여하며 연대하는 이들도 있다. 사회가 지우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우리가 서로 들었다.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당연지사한 사실을 현실에 지쳐 점차 잊어갈 때 이화인 10명 중 9명이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정의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좋겠다.

나의 곁에도 페미니즘을 함께 피력하는 이들이 있다. 설문조사를 홍보하기 위해 40개의 강의실에 방문하고, 30번의 인터뷰에 참석한 취재2부서 기자들. 오전 7시까지 더 좋은 기사를 위해 수정에 수정을 거듭한 데스크. 발행된 기사를 잘 읽었다고 연락해준 친구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