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보스턴에서 기술의 STEM이 돼주는 이화인들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자리에 선 이화인들

2025-09-28     강예본 기자

편집자주 | 해외에서의 커리어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기회를 붙잡는 순간 현실이 된다. 넓은 땅 미국에서 이화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미국에서 길을 낸 이화인들을 그들의 일터에서 만나 도전과 성장의 여정을 들어봤다. 이번 기사에서는 해외에서 일궈낸 삶의 여정을 전하며 재학생과 동문 모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하고자 한다. 

보스턴지회의 강주경(약학・12년졸), 공정원(영문・83년졸), 이수용(생명・09년졸)(왼쪽부터)씨. 변하영 사진기자

세계적인 대학이자 연구기관이 즐비한 미국 보스턴은 매사추세츠공과대학 (Massachusetts Institute of Technology·MIT),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sity) 등을 품고 있는 지식의 도시다. 그 한가운데서 생명과학부터 약학, 소비자학, 컴퓨터공학까지 각기 다른 분야에서 전문성을 증명해 온 이들이 있다. 이화동창회 보스턴지회는 각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이화인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보스턴의 한 식당에서 공정원(영문∙83년졸), 이수용(생 명∙06년졸), 강주경(약학∙12년졸)씨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보스턴 지역에 사는 이화인을 연결해 준 ‘2024, 2025 STEM’ 보스턴지회는 이공계 직군에 종사하는 이화인들이 한국에서 해외 유학 및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을 돕고자 ‘2024 STEM’(프로그램)을 기획했다. STEM은 △과학(Science) △기술(Technology) △공학(Engineering) △수학(Mathematics)의 약칭이다. 프로그램은 한국에 있는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줌으로 진행됐으며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들이 후배들의 질문을 받아주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보스턴지회장 공씨는 동창회에서 각자 종사하는 분야의 이야기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프로그램이 구상됐다고 말했다. 그는 일하는 분야가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이 이야기를 후배들에게도 해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 많은 동창회 구성원이 멘토로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했기에 작년에 이어 ‘2025 STEM’도 진행했다.

후배들에게 조언을 나누고 싶은 선배라면 누구든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선배들의 열띤 홍보 덕분인지 보스턴 지역을 지망하는 학생들 외에 한국에서 미국으로의 취업을 꿈꾸는 이들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공씨는 문과 계열을 공부하고 있지만 이공계 계열을 지망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프로그램은 미국의 STEM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어떤 대학원을 나와 무슨 과정에 들어가야 하는지 등 쉽게 얻을 수 없는 귀한 정보가 오가는 교류의 장이었다. 이씨는 미국에서는 인적 네트워크가 중요하다며 “프로그램이 관련 직종을 희망하는 이화인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 고 말했다.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어 화이자에서 신약 프로그램 팀장이 되기까지

강주경

화이자에서 신약 개발 프로그램 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강주경씨. 변하영 사진기자

프로그램에 멘토로 참여했던 강씨는 화이자에서 신약 개발 프로그램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개발의 시작부터 세상에 유통되기까지의 과정에서 관리자 임무를 맡고 있다. 강씨는 이타적인 성격을 강점으로 꼽았다. 주된 업무가 실험은 아니지만 시간이 나면 랩에 가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을 하며 동료들을 돕는다. “회사에서는 다들 자기 일하기에 바쁜데, 도움을 요청받은 일을 맡은 일처럼 하다 보니 좋은 평판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독한 성격도 미국 생활을 하며 큰 도움이 됐다. 유학 초창기 능숙하지 않았던 언어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극복하려고 애썼다. 그는 미국 내 네트워크가 부족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하기를 권했다. “저는 영어도 못하고 프레젠테이션도 정말 싫어했어요”라며 당장은 부족하게 느껴질지라도 일 하며 적응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전공의 한계를 넘어 식약처에서 선임 심사관이 되기까지

이수용

미국 식약처(FDA)에서 일하고 있는 이수용씨. 변하영 사진기자

이씨는 미국 식약처(FDA)에서 일하며 바이오의약품 승인 과정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을 평가하는 업무를 하고 있다. 신약, 특히 유전자 치료제의 제조 및 품질 관리 자료를 평가하고 규제 정책을 수립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새로운 분야를 배우려는 적극적인 자세를 자신의 강점이라고 말했다. 처음 식약처에 지원할 때 들어간 부서는 전공한 유전 분야와는 다른 백신 분야였다. 바이러스 연구는 직접 하지 않았지만, 대학원 때 배운 관련 실험 기술, 문제 해결과 비판적 사고 능력이 그의 식약처 입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히 준비되지 않았을 경우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지원을 주저하지만, 그는 “지망하는 분야와 그동안 해왔던 분야가 다르더 라도 겹치는 지점이 있으면 도전해 보라”고 권했다. 이씨는 자신은 부족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원하는 직무에 뽑혔다면, 앞으로의 가능성을 높이 산 것이니 역량을 펼치면 된다고 말했다.

강씨와 이씨 모두 해외 취업을 고민하는 이화인들에게 “주저하지 말고 일단 나오라”고 말했다. 우선 도전을 해야 비자나 영주권을 얻을 기회도 생긴다는 것이다. 또한 취업과 동시에 해외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외에서 생활하는 경험이 본인에게 적합한지 시도해 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여러 가지 도전을 할 수 있을 나이에 많이 시도해 보기를 권했다.

 

경영, 디자인, 패션 등 분야로 프로그램 확장할 예정

이화동창회 보스턴지회의 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공정원씨. 변하영 사진기자

프로그램 이후에도 이화의 연은 이어지고 있다. 강씨는 프로그램 이후 많은 후배들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말했다. 화상통화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아낌없이 조언했고, 미국 취업에 도움이 되는 추천서 작성도 도왔다. 이씨는 프로그램 이후 보스턴지회에서 임원으로 활동하며 STEM이 아닌 분야의 전문가로 일하는 선배들의 조언을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 중이다. 보스턴지회는 경영, 디자인,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조언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예정이다. 공씨는 동창회가 정보를 교환하는 장이자 믿을 수 있는 공동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이 험한 미국에서 서로 믿을 수 있는 안전지대를 만들어준다며, 보스턴지회가 앞으로도 “가족 같은 분위기”를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트러블슈팅 : 발생한 문제의 원인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찾아내 해결하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