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취재] 공동체의 새로운 길을 열다···이화에서 세인트 토마스 처치까지의 도전
미국이라는 무대에서 각자의 자리에 선 이화인들
편집자주 | 해외에서의 커리어는 멀게만 느껴지지만, 기회를 붙잡는 순간 현실이 된다. 넓은 땅 미국에서 이화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미국에서 길을 낸 이화인들을 그들의 일터에서 만나 도전과 성장의 여정을 들어봤다. 이번 기사에서는 해외에서 일궈낸 삶의 여정을 전하며 재학생과 동문 모두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하고자 한다.
성공회 사제로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나
뉴욕 맨해튼 중심에 위치한 세인트 토마스 처치(Saint Thomas Church)는 지난 200년간 백인 남성 상류층을 위한 교회의 상징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포용적 태도를 지닌 사제가 주임으로 오면서 최근 10년 교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그는 아시아인을 비롯해 한국인을 위한 사역을 원했고, 주교의 추천과 면접 과정을 통해 이 자리에 오게 됐다. 일요일에는 5회 이상의 예배가 진행되고 모든 사제들이 돌아가며 예배 인도와 설교를 맡는다. 매달 팬-아시안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땅에서 이민자로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을 지원하는 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어 미사도 시작해 전반적인 미사 진행을 맡고 있다.
미국 성공회 안에 여성이자 한국인으로서 겪는 어려움은 없었나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말을 많이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능력과 역량을 드러내야 한다. 한국에서는 겸손해야 한다는 교육을 받고 자라서 처음 사제가 되기 위한 인터뷰에서 나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다. 이제는 일하며 나의 역량을 드러내는 능력을 길렀다. 사역하는 과정 중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이 교회에서 첫 동양인 여성 사제로 ◆성만찬을 진행했을 때, 나에게 성만찬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다. 하나님 안에서 서로를 똑같이 대해야 한다. 여성 동양인으로서 리더로 있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함이지만, 동시에 큰 깨달음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종 차별 의식이나 성차별 의식을 갖고 있는 이가 아무런 불편함을 느낄 수 없는 교회는 교회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뉴욕에서 일하며 많은 리더를 만나봤을 것 같다.
닮고 싶은 좋은 리더는
성경 속 예수가 가장 좋은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섬기는 리더십인데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기는 모습은 세상에서 볼 수 없다. 둘째는 배려하는 리더십이다. 누구보다 힘들었을 자리에 있으면서도 제자들을 쉬게 하려고 했던 모습에서 감동 받은 적이 많다. 또 하나는 편견 없는 리더십이다. 남성 우월주의가 만연했던 시절 편견 없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자들을 품었기에 좋은 리더라고 생각한다.
이 자리에 오기까지 자신의 강점을 이야기한다면
뭐든 부딪히는 편이다. 어머니는 ‘똥배짱’이 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웃음) 걱정하거나 마음 졸이는 스타일도 아니다. 부딪혀보고 잘못된 것을 찾으면 ‘고치면 되지’라는 생각으로 다음에 더 잘하려고 다짐한다.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고, 도전하면서 배우고, 스스로를 조금씩 바꿔가며 발전하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왜 와있는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특히 미국에서 나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들을 접할 때 ‘하나님이 왜 나를 여기에 보내셨을까’에 대한 질문을 많이 하게 된다. 누군가 ‘왜 우리가 한국 사제가 필요해’라고 물었을 때 동료가 ‘마더 프리스카(세례명)는 한국 사제로 이곳에 와 있는 게 아니야 사제로 와 있는 거지’라고 답해줬다.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미국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편견을 깨기 위해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미국으로의 여정까지 이화가 준 도움은
학부 시절부터 대학원, 그리고 2년 동안 교직원으로 일하며 거의 10년 있었기 때문에 이화는 나에게 피와 살이 됐다. 수업에서 여성 신학자로서 이 사회에 어떻게 공헌할 수 있는 가를 배웠다. 사회에서 의미 있는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다. 이화에서 얻은 것들 덕분에 지금 제 일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취업하고 싶은 이화인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은 정말 경쟁이 심한 곳이다. 그걸 생각할 때마다 너무 안타깝고 마음이 아프다. 다같이 열심히 하고 있을 때는 잘 모른다. 나와서 보면 그렇게 열심히 살고 성실하게 일하는 훌륭한 사람이 많지 않다. 용기와 비전을 가지고 한국에서 잘 견뎠다면 어디를 가도 뭐든지 다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성만찬 :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던 전날 밤에 열두 제자에게 그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를 나누어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행하는 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