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소년표류기-⑤] 서울이 기준이 된 사회, 아이들은 떠밀린다

서울 중심적 사회 풍토 탓 고향에서 살고 싶어도 떠날 수밖에

2025-09-28     정보현 기자

편집자주소년도 청년도 아닌 회색지대, 청소년. 성인기로 진입하는 길목에 선 그들은 손쉽게 배제되고는 한다. 특히 지방 청소년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은 지 오래다. 서울에 관심이 집중된, 이른바 ‘서울공화국’ 한국에서 청소년들은 서울로 향해야 한다는 기대에 가로막혀 목적지를 잃고 표류하기 쉽다. 모든 청소년이 자신만의 미래를 향해 갈 수 있도록, 이대학보는 약 두 달간 인구감소지역인 강진, 양양, 영덕에 방문해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방소년표류기는 1713호를 시작으로 3주간 연재된다.

양양 청소년들이 꾸민 서핑보드가 가꿈아지트에 위치해 있다.

‘제주도에 백화점도 대형 쇼핑몰도 이케아도 없는데 불편하진 않으신가요. ㅠㅠ’라는 구독자의 댓글에 한 크리에이터의 답변이 화제다. “써봤어야 불편할 거 아니야! 있어 본 적이 없는데 없어서 불편하겠냐!”

해당 인스타그램 릴스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으며 19일 기준 880만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서울은 ‘재미’와 ‘편리함’의 기준이 된다. ‘대전은 왜 노잼도시가 되었나’ 주혜진 작가는 이러한 현상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각자 자기 나름의 재미를 발굴하고 즐기면서 살고 있어요. 그런데 재미의 기준점과 재미의 유무를 결정하는 권한, 위세 자체가 서울에 있잖아요. 저기(서울)에 끼지 않으면 우리 거는 재미가 없는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서울중심주의는 사람들을 고향 밖으로 내몬다. 강진, 양양, 영덕 청소년 152명을 대상으로 한 본지 설문 결과, 10명 중 8명이 지역 이동을 희망했다. 하지만, 두 달간 직접 만나본 청소년들 대부분이 살고 있는 지역 자체는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올리브영만 있으면’, ‘엽기떡볶이만 있으면’ 거주지에서 계속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지역 일자리 걱정도 한몫했다. ‘일자리만 있다면 원래 살던 데에서 살고 싶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17일 발표한 ‘최근 20년간 수도권 인구이동’을 살펴보면, 19세~34세 청년층은 지속적으로 수도권으로 순유입됐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직업과 교육이었다. 고려대 노형진(생명공학부∙25)씨는 “사실 대학이 양양에 있었다면 그냥 양양에서 다녔을 것 같다”며 굳이 친구들과의 추억이 담긴 고향을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 청소년들은 엄격한 성공의 기준 앞에 ‘마지못해’ 서울로 이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이 요구하는 ‘평균의 삶’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지역에서 이주한 청년들이 살아남으려면 나쁘지 않은 주거지를 확보하고 적정 수준 이상의 월급을 받는 직장을 얻어야 하는데, 이러한 평균의 과정을 해내지 못하면 서울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이다. 양양도시재생지원센터 김희주 사무국장은 “지방에서 연고가 없는 서울로 상경할 경우, 그 평균의 삶을 살기 위해서도 힘이 많이 든다”고 말한다. 

상당한 노력과 자원을 요구하는 ‘평균’은 지방 청소년에게는 큰 장애물이다. 타지역에 거주하다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면 ‘벗어나지 못한 실패자’라는 오명을 쓰기도 한다. 영덕문화광광재단 이진경 주임은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지내는 애들은 ‘마음대로 잘 안 됐구나’, 그런 인식이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양양으로 귀촌해 아이들을 키우는 모임 ‘로컬브릿지양양’ 김정림(40)씨는 “현재 우리나라 교육의 목표는 도시로 향하고 있다”고 말한다. 어떤 게 가치 있는 삶이고, 어떤 게 잘 사는 삶인지를 도시를 표준으로, 어떤 아파트 평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를 성공의 척도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것, 공부로 성공하는 것만을 목표로 두는 한국 교육에서, 교육이나 대학 인프라가 몰린 수도권에 청년이 계속해서 몰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포항 출신 ㄱ씨는 우리대학에 합격해 20살에 처음 서울에 왔다. ㄱ씨는 이런 이주의 경험을 한 번 해보고 나니, ‘앞으로도 내 인생을 이렇게 떠다니면서 사는 건가’, ‘언제까지 떠다녀야 하는 건가’ 싶었다며 ‘끝도 없이 집을 이고 다니는 달팽이가 된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ㄱ씨는 신상 특정을 우려해 익명을 요청했다.

김 사무국장은 그래도 남기로 결정한 사람들이 고향에 남았을 때 시선이나 조건이 나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들을 ‘인서울 못 해서’, ‘성공하지 못해서’ 지역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는 인식 자체가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정림씨는 양양에서 요트 사업을 하며, 수도권 생활에 지쳐 바다를 보러 오는 사람을 만나곤 한다. 그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한 번쯤 돌아봤으면 좋겠다”며 “내 아이가 어디로 갈 것인지를 교육이나 부모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틀에 가두지 않은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행복추구권’. 헌법 제10조 1항에 명시된 권리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이다. 사람은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지역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할 자유와 권리가 있다. 어른들이 세운 성공과 서울에 대한 잣대 탓에 한국 사회에는 세찬 물결이 만들어졌다. 소년들과 청년들은, 그 사이에서 원하지 않는 표류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어디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감각을 가지지 않도록 국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 때다.

 

※ 지방소년표류기팀(김지수, 박소영, 변하영, 이선영, 정보현, 정재윤) 공동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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