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대학교 시배틀에서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우승
취향 담은 시로 모인 국문과 동기들 새로운 문학 향유 방식이라는 평가
대학가에서 인스타그램 문학 인플루언서 ‘glgzuk’(긁적)이 개최한 ‘제1회 대학 시 배틀’(시배틀)이 인기를 끌었다. 시배틀에 참여한 우리대학 국어국문학과 학생들이 27일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배틀은 기존 문학 공모전이나 출판물과 달리 SNS 플랫폼을 기반으로 진행됐다. 대결마다 다른 주제로 참여자들이 시를 창작하고,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이 더 좋은 시에 투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대결마다 흑백을 나누고 공정한 평가를 위해 소속대학 및 작성자는 공개하지 않았다. 대회 참여자들은 댓글과 ‘좋아요’, 공유하기 등 다양한 SNS 기능을 통해 일반 사용자들과 소통하며 시를 즐겼다. 결승전 결과는 특별히 인스타그램 투표 60%에 심사위원 평가 40%를 더해 종합적으로 산출했다. 심사위원은 △김승일 △ 성동혁 △양안다 △이소호 △이제야 △차유오 △최현우 시인이 맡았다.
새롭게 시를 접하는 방식에 독자들과 연구자들은 모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투표에 참여한 송유정(불문∙24)씨는 인스타그램은 접근성이 좋아 댓글을 통해 실시간으로 소감을 나누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기에 좋았다고 말했다. 정끝별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시를 즐기는 방식은 시대의 요구에 맞게 다양하게 변화해왔고 시를 향유하는 주체와 방식 또한 새롭게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번 시배틀은 최근의 세대에 적합한 새로운 시 향유 방식이 될 수 있다고 해석했다.
우리대학에서는 △유영(필명∙국문∙23) △도이연(필명∙국문∙23) △김윤선(국문∙23) △김현우(국문∙23)씨가 시배틀에 참가했다. 12개 대학의 문학 관련 학과가 참여했다. 국어국문학과 동기인 우리대학 팀은 유영씨가 시배틀 모집 글을 본 것을 계기로 모였다. 처음에는 독자들이 좋아할 만한 시를 고민하기도 했지만, “넷 중 하나는 마음에 드는 게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모두 각자의 취향을 양껏 담아 시를 썼다”고 유영씨는 이야기했다. 도이연씨도 학교 이름을 걸고 쓰다 보니 초반에는 독자 반응이 신경 쓰였지만, 어느 순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한 시는 자신의 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색깔대로 창작하는 과정에서 “내가 쓰는 시들이 어떤 스타일인지 알게 된 것 같아 좋다”는 소감을 전했다.
네 시인 모두 준결승전에서 ‘기하학’을 주제로 쓴 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꼽았다. 김현우씨는 “문과 외길을 걸은 참가자들에게 이런 시련을 주다니”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구체속구체적사색’은 소설 ‘데미안’(1919)을 모티브로, 현실에서는 완벽한 구를 작도할 수 없으니 각자의 곡률을 가진 알을 껴안고 부화하라는 응원의 의미를 담았다. 김윤선 씨의 ‘공간_이동_신청서.’는 스스로를 어디든 이동할 수 있는 존재로 정의하고, 발 딛는 모든 곳에서 충실하게 살아가겠다는 시다. 도이연씨는 수박을 포크로 찍어 먹다가 아이디어를 얻어 ‘프랙탈 프락치’를 썼다. 그는 “큐브수박이라는 소재는 큐브틀로 인해 아름답고 먹음직스런 모양으로 재탄생한 인조물”이며 특정 모양을 추구하는 세계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원형을 찾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밝혔다. 유영씨가 쓴 ‘베이글에 관한 위상기하학적 고찰’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2022)에서 영감을 받았다. 그는 시에서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크림치즈보단 딸기잼이란 것’을 가장 중요한 행으로 꼽았다. 사소한 취향이 누군가를 살아가게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시배틀 주최자 긁적은 조선시대에 명나라 사신과 집현전 학자들이 했던 ‘시문배틀’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스타그램에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람들이 정제된 매체인 책만을 문학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의 투표 과정 자체도 한 권의 ‘책’처럼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