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랑연구할랩(Lab)] 보건 결정권 없는 세계 여성들... "관습 탈피와 기준 변화 필요"
개발도상국 국제보건 문헌 분석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 전환해야"
편집자주|우리대학은 교육의 산실이기도 하지만 94곳의 연구 기관을 보유한 연구터이기도 하다. 이대학보는 변화를 이끌고 현실을 포착하는 흥미로운 연구를 소개한다. 1715호에서는 행정학과 강민아 교수를 만나 국제보건 분야에서 여성의 역할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들어봤다.
보건 분야의 성평등은 의료 체계에 취약하고 여성의 결정권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일수록 더 큰 과제로 남는다. 우리대학 강민아 교수(행정학과) 연구팀은 문헌 연구로 개발도상국에서 이뤄지는 국제보건 프로젝트에서 여성이 수행하는 역할을 분석했다. 본지는 19일 강 교수를 만나 개발도상국에서의 성평등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연구 취지를 간략히 소개한다면
“기존에 진행된 국제기구 및 비정부기구(NGO)의 개발도상국 내 보건 프로젝트를 다룬 문헌을 살펴봤고, 여성의 역할이 프로젝트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 있는지 분석한 연구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국제기구에서 보건 프로젝트를 선정할 때 젠더적 요소를 고려하도록 돼 있다. 그럼에도 개발도상국 프로젝트를 수행 및 평가하는 과정에서는 늘 여성을 수혜자나 피해자로만 포함시키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성 때문에 여성이 언급되는 빈도수를 고려하는 양적 논의보다는 여성이 언급되는 내용을 다루는 질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성의 주도적 프로젝트 참여를 성평등 평가 지표로 삼자는 취지로 관련 문헌을 살펴보며 연구를 시작했다.”
기존 성평등 접근법의 문제점과 새롭게 제시한 접근법의 필요성은
“기존에 프로젝트를 설계할 때는 성평등에 대해 젠더 센서티브(gender sensitive)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단순히 여성을 더 많이 배려하자는 취지의 접근법이다. 하지만 젠더 불평등은 이러한 방식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사회의 구조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 기존 방식에 대한 아쉬움에 여성을 보는 관점 자체를 전환하자는 논의를 하고자 젠더 트랜스포머티브(gender transformative) 접근법을 고안했다. 이 접근법은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여성이 얼마나 적극적인 역할을 했는가를 성평등 판단의 지표로 삼는다.”
강 교수 연구팀은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를 기점으로 연구 대상 문헌을 선정했다. 해당 대회 이후 국제사회 차원에서 저소득·중간소득 국가 여성 권리 증진을 위한 노력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연구에서는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은 변하지 않았음을 짚는다.
보건 분야에서는 여성들이 어떻게 역할하는가
“보편적으로 여성의 역할로 간주되는 간호 및 보건 분야에서조차 여성들이 프로젝트를 주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개발도상국의 여성들은 현재까지 △생식 건강 서비스 부족 △산전·산후 관리 미흡 △의료 시설 접근 제한 등의 피해를 보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보건 분야 속 여성들은 수혜자나 피해자 등 단편적인 역할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예시로 식수 위생 사업에서는 (여성이) 물 관리에 대한 지리적·위생적 감각과 지식을 더 많이 갖추고 있다. 보건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갖춘 여성들조차 생사 및 건강에 대해서는 결정권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문헌이 다룬 프로젝트 속 여성들을 분류한 기준과 그 결과는
강 교수 연구팀은 문헌 속 프로젝트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을 참여자와 수혜자 및 희생자로 구분하고, 참여자를 다시 △강력한 참여자(strong enabler) △중간 참여자(intermediate enabler) △수동적 참여자(passive enabler)로 나눴다. ‘강력한 참여자’에는 보건 프로젝트에서 주도적으로 리더의 역할을 수행한 여성들이 해당됐다. 표면적으로는 여성이 결정을 내렸지만 남성의 승인이 필요했을 경우 ‘수동적 참여자’에 포함했다. 그 사이 단계의 유형이 ‘중간 참여자’이다. 모든 분류는 문헌의 내용을 분석해 정
성적으로 평가했다.
“‘여성’, ‘건강 시스템’, ‘저소득 국가’ 등의 키워드로 검색된 1671개의 문헌을 분석해 연구 대상을 선별했다. 최종적으로 문헌 속 프로젝트에 나타난 여성의 역할이 참여자에 해당하는 문헌은 단 10개였다. 이 가운데 2개 문헌에서만 강력한 참여자를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었다. 에티오피아 모자보건 프로젝트의 리더로서 강한 실천 의지를 보여준 여성들이 강력한 참여자의 예시다. 시에라리온의 분쟁 상황을 다룬 문헌 속 여성들은 수동적 참여자로 분류했다. 시에라리온 여성들은 생활 안정을 위해 전형적인 남성의 역할로 여겨지는 경제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럼에도 가정 내 모든 건강 문제의 실질적 결정권은 남성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베냉, 나이지리아 등을 다룬 문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결국 여성이 피해자나 수혜자로 나타나거나, 결정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수동적 참여자에 그치며 성 역할을 고착화시키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실질적으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문화와 관습의 문제이기에, 변화를 일으키기 쉽지 않다. 연구 대상 국가의 여성들은 오랜 시간 동안 이어져 온 성차별적 문화 관습을 벗어나기 힘들다. 이 관습을 탈피하고자 하는 이탈자들을 부각해야 한다. 모두가 관습을 당연히 여기는 사회 속에서 관습을 이탈하고도 충분히 잘 살아가는 강력한 참여자들이 필요하다. 지역사회나 공동체 차원의 변화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공동체 내 역할에 대한 기준을 먼저 바꿔야 한다. 그다음 제도적 제약을 해소해야 한다. 여성들이 사회 속에서 적극적으로 역할을 실천하려 해도 제도적으로 허가를 해주지 않는 국가들이 있다. 이러한 제약을 완화하는 노력을 국제사회가 함께해야 한다.”
강 교수는 비영어권 국가의 문헌을 분석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은 점을 연구의 가장 큰 한계로 봤다. 실제 사례가 발생한 각 국가들의 언어를 포괄할 때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강 교수는 연구를 시작했을 당시 국제기구에 젠더 트랜스포머티브 접근법을 제안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유엔난민기구(UNHCR), 유엔식량농업기구(FAO) 등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젠더가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중이라며, 이를 분석해 후속 연구로 발전시키고자 한다는 희망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