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야 산다] 나를 초월하되, 나다운
우리대학 사범대학 과학교육과를 1988년에 졸업했다. 청소년과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며 신문활용교육(NIE), 학교 진로독서 강의와 기업의 경영독서 지도를 겸하고 있다. 깊이 공감하는 순간이 있는 책 읽기, 행복해지는 책 읽기가 가치 있는 삶을 만든다고 믿는다. 최근 청소년의 공감 문해력을 위한 책 ‘왜 공감해야 하나요?’를 출간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라는 글을 접한 적이 있다. 프랑스 작가 폴 부르제(Paul Bourget)가 남긴 말이다. 블로그 글에서 우연히 보게 된 이 짧은 문장이 내 안에 깊이 각인된 지는 꽤 오래다. 생각하는 대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것인지, 그런 의문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무런 의식 없이 되는 대로 살면 비참해진다는 말처럼 들려서였을까? 왜 그 말에 꽂혔을까! 나는 ‘생각’이라는 단어에 집착한 것 같다. ‘생각’의 사전적 의미는 여럿이다. 사고, 상상, 계획, 분별, 견해, 욕구, 기억 등 다양한 의미를 품고 있다. 나에겐 그날 이후, 나의 생각 없이 남이 하는 대로, 타인의 생각을 따라 사는 인생이 많다는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의외로 자주 찾아왔다.
“책을 읽으면 뭐가 좋아요? 요즘같이 검색만 하면 다 알 수 있는 시대에 책을 왜 봐야 해요?” 독서 수업에 온 학생들이 내게 묻곤 했다. 독서를 힘들고 지루한 일로 여기는 아이들에게 책이 왜 좋은지, 책을 읽으면 어떻게 나의 생각이 만들어지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책 읽기가 억지로 하는 숙제가 아니라, 재미있는 일이고 나만의 생각을 찾아가는 것임을 깨닫게 해 주어야 했다. 시간이 걸리고 꾸준한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책을 읽고 든 생각과 소감을 나누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눈이 총총한 빛으로 가득하다. 그 빛은 책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눈빛이다. 책이 주는 선물과도 같은.
“나에게 책은 ( )이다”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당신은 어떤 답을 넣을 것인가? 책을 읽다 보면 내가 보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책 속 어느 문장과 마주한 내 마음에 똬리를 튼 채 자리 잡고 있던 감정들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내가 생각한 것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야기에 빠져들면서 주인공이 경험하는 세계로 들어가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보면 감정이입과 공감을 통해 타인의 관점으로 나를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진짜 나를 만나는 순간이다. 그때 느끼는 저릿한 쾌감과 가슴이 뭉클한 경험은 너무도 값지고 소중하다. 그 재미로 나는 책을 읽는다. 분명히 내가 모르는 사람이 쓴 책인데, 마치 나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사람처럼 내 마음 구석구석을 꿰뚫어 보는 듯한, 텔레파시가 통하는 그 찰나의 감동. 그래서 나에게 책은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질문하는 힘이 중요해진 시대를 살고 있다. 질문을 잘하는 능력은 그냥 생겨나지 않는다. 생각하는 능력이 있어야 제대로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사고력과 판단력, 분별력이 있어야 질문을 잘 할 수 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인지해야 좋은 질문을 뽑아낼 수 있는데, 그 능력은 ‘발문’이라는 개념을 익히는 과정에서 얻어진다고 생각한다. 독서 수업을 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이 바로 발문이었다. 책을 읽는 과정에서 궁금하고 의아한 점이나 정답이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닌,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열린 질문을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좋은 발문이다. 책 속 여백에 생각을 메모하거나 공감 가는 문장에 밑줄을 긋고, 정리한 생각을 노트에 옮겨 적는 일은 발문을 위한 준비 작업이다. 발문을 어려워하던 아이들도 책을 읽으며 생각이 자라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놀라운 발전을 보인다. 나의 마음과 관점을 벗어나 타인의 관점으로 생각하며 사고가 확장되는 느낌은, 나를 넘어섬으로써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 나를 초월하되 나다운 사람으로 여기게 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어렵고 힘든 일 중 하나가 인간관계의 갈등이다. 학교나 직장 등 사회적, 공적 관계뿐 아니라 가족, 친구, 이웃 등 가까운 사적 관계에서도 여러 갈등으로 아파하고 고민한다. 인간관계의 갈등은 공감 부족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말과 행동을 오해하고 지적하는 일들이 우리를 지치게 한다. 타인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내는 능력을 ‘공감 문해력’이라는 말로 풀어보고 싶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에 ‘공감’을 붙여서 새로운 개념어를 만들어 책을 냈다(‘왜 공감해야 하나요?’, 선스토리, 2025, 이홍명 외 3인 공저). 타인의 말과 생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공감 문해력은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다. 자신에게 먼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남에게도 공감할 수 있다는 것, 공감 능력이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을 해결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이 시대에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 묻는 이들에게 전하고 싶다. 나를 초월하되, 나다운 사람이 되는 데 책만큼 좋은 친구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