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노리는 전세사기...“근본적인 제도 개선 필요해”
대학가에서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을 노린 전세사기 사건이 잇따르며 청년층의 주거 불안이 심화되고 있다. 이에 정치권은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하겠다는 견해를 내놓았지만 청년 피해자들은 실효성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호소한다.
# 이주연(트랜스포메이션디자인 전공 석사과정)씨는 관악구 자취촌의 4.5평 집에서 살아가던 중 1억의 전세사기를 당했다. 집주인이 계약만료일에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것이다. 이씨는 전세사기 피해 사실을 알았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최근 신촌 일대에서 발생한 대학생과 사회초년생을 상대로 하는 수십억 원대 전세사기 사건이 재판에 넘겨졌다. 집주인 최씨는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하며 세입자들의 보증금 약 70억원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전세사기 위험이 커지자, 학생들은 경제적 부담을 감수하면서도 월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대학 앞 월세는 평균 71만 원에 달한다. 신수빈(국문·24)씨는 매달 110만 원의 월세를 내며 자취하고 있다. 신씨는 “수법이 다양해 대비하기 어려운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해서 높은 월세가 부담이 되더라도 전세보다 낫다고 생각한다”며, “매달 100만 원의 고정 지출을 부담하시는 부모님께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월세 거주가 경제적 부담은 크지만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한 최선이라는 것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전세 계약 시 수반되는 위험을 입주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다. 집주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공인중개사도 집주인 의 신용 정보를 조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신촌 스타게이트 부동산 강현우 공인중개사는 “전세에는 어느 정도 위험 요소가 존재하기 에 이제는 전세 계약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인중개사도 전세 사기를 완벽히 막기는 힘들다”며 전세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짚었다. 공인중개사가 등기부등본에 공시된 임대인의 정보, ◆근저당권만으로는 집주인의 실제 재정 상태를 확인할 수 없어 안전한 주택인지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법률 전문가 역시 전세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서을오 교수(법학과)는 “기존 제도로는 전세 사기를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며, “현행 전세사기특별법(특별법)으로 전세사기를 당한 사람이 입은 피해가 ‘줄어드는’ 측면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전세사기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서 교수는 특별법의 ◆우선매수권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매입 전환은 “기존 임대차보호법에서 보장받을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하는 일종의 법적 특권”이라고 설명했다. 특별법으로 일부 세입자 구제는 가능하지만 전세사기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올해 7월 국정기획위원회(위원회)는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 대책인 ‘소액임차인 최우선 변제금 확대’와 ‘피해 주택 신속 매입’을 추진 과제로 선정할 것을 대통령실에 제안했다. ◆최우선 변제금은 전세사기 피해 복구를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이다. 피해 주택이 경매에 넘어가더라도 세입자가 보증금 중 일정 금액을 다른 담보물권자들보다 먼저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한다. 전세사기 피해자가 최우선 변제금을 받기 위해서는 특정 금액 이하의 보증금으로 전세 계약을 맺은 ‘소액임차인’에 해당해야 한다. 소액임차인을 정하는 보증금의 기준은 꾸준히 상향됐지만 지금까지는 ‘근저당 설정 시점’을 기준으로 적용됐다. 예컨대 집주인이 2021년에 근저당을 걸고 세입자가 2024년에 계약하면, 2021년 기준이 적용돼 실제보다 적은 인원이 소액임차인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신속 추진 과제로 지정되면 기준 시점이 ‘임대차 계약 시점’으로 바뀌어 약 2000명이 추가로 최우선 변제 혜택을 받게 된다.
또 다른 대책으로 위원회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피해 주택 매입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피해자들의 보증금 회수가 빠르게 진행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기존 제도에서는 매입 절차가 지나치게 복잡해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위원회는 지방법원이 경매나 ◆공매를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한국토지주택공사가 피해 주택을 매입하는 기간을 약 3개월로 단축하겠다고 밝혔다.
청년 주거권 보장을 위한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민유)은 ‘최우선 변제금 대상자 확대’ 제도를 두고 피해자의 신속한 피해 구제를 가능하게 한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전세사기 피해를 입고 돌아가신 분 중에 최우선변제금액 정도의 회복조차 불가능하셨던 분들이 많다”며, “최우선 변제금 확대는 기존의 피해자 구제 제도를 일부 정상화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세사기 피해자가 생각한 시급한 과제는 조금 달랐다. 이씨는 “구제 대책조차 가해자의 편이었다”고 말했다. 이씨가 변호사를 알아보고 상담을 받으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제도는 하나도 없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전세사기는 제도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피해자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동안 가해자는 그저 피해자가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리면 된다”며 무력감을 토로했다. 복잡한 법적 절차와 전 재산을 날렸다는 절망감으로 인해 피해 보상 절차에 발을 들이는 것조차 큰 결심이다. 이씨는 “청년들에게는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 가장 필요하다”며 정부가 나서서 부동산 시장을 규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정부가 주거권을 보장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야 임대차 시장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유 또한 피해를 줄이는 제도에서 나아가 근본적인 피해를 막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기존 제도인 분양주택 확대나 대출 확대는 세입자의 권리 보장과 향상에 이바지하지 못한다. 분양주택은 ‘내 집 마련’의 통로처럼 보이지만 분양을 받아 거주하는 가구 중 자가 비율은 60%에도 미치지 못한다. 민유는 대출 확대는 투기를 촉진하는 결과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대출으로 부동산을 매입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시세 차익을 위해 되파는 메커니즘을 지적했다.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접근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임대인이 돌려줄 수 있는 보증금만 받게 하는 ‘보증금 상한제’와 공공임대주택의 확대 등의 방안을 제시했다.
◆근저당: 임대인이 채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이를 대비하기 위해 미리 특정 부동산을 담보물로 잡는 저당
◆우선매수권: 전세사기 피해 세입자가 해당 주택을 경매에서 낙찰받을 수 있도록 특례 지원 받거나 세입자로 계속 거주하고 싶다면 LH, SH 등이 해당 집을 사서 싸게 임대받을 수 있는 권리
◆공매: 세금 체납 등 강제적인 이유로 압류된 재산이나 금융기관의 비업무용 재산 등을 국가나 공공기관이 일반인에게 공개적으로 매각하는 절차
◆최우선 변제금: 소액임차인이 보증금 전액 중에서 다른 담보 물권자보다 우선하여 변제받을 수 있는 금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