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대담] 이화인이 말하는 젠더 정치의 민낯, 삭제당한 여성들

2025-06-01     김나영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치러지는 제21대 대통령 선거(대선)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탄핵 국면에서 2030 여성들은 광장의 주역으로 주목받았다. 이들은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 없는 평등 사회를 요구했고, 언론과 정치권은 탄핵 광장을 ‘빛의 혁명’으로 명명했다. 그러나 대선을 앞두고 여성·소수자 의제가 실종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본지는 5월27일, 광장에 나섰던 이화인들을 만났다. 우리대학 래디컬 페미니즘 동아리 래디(RAD-E) 소속 박의서(가명, 경영·20)씨, 더불어민주당(민주당) 권리당원 유다래 (컴공·24)씨,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이화여대분회 분회장 조민형(국어국문학 전공 박사 과정)씨와 함께 탄핵 이후의 정치에 대한 논의를 나눴다. 

대선대담에 참여한 이화인들이 성평등 이슈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제21대 대선 속 사라진 여성과 성평등

민주당 이재명 후보가 발표한 공약에는 ‘여성’과 ‘성평등’이 실종됐다. 이재명 후보는 여성 정책을 요구하는 여성계 대표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지만 “이번 선거 시기의 특수성을 이해해 달라”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씨는 제20대 대선에 비해 민주당의 여성 정책이 퇴보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이재명 후보의 제20대 대선 당시 여성 공약은 △산부인과 명칭을 여성건강의학과로 변경 △연대관계등록제 도입 △성별, 연령 고려한 통합정부 균형내각 구성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30% 내각 할당제, 생활동반자법 도입을 공약으로 내세우지 않은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유씨는 민주당은 충분히 공약을 마련할 능력이 있음에도 고의로 여성을 묵인한다고 봤다. 유씨는 “현재 민주당이 제20대 대선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당선 요인을 민주당의 여성 정책 때문이라 꼽는 것 같다”고 말했다. 페미니즘 정책으로 남성의 표심을 잡지 못한 것을 패인으로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에 박씨는 2030 청년 남성들이 보수 진영 후보를 뽑는 것을 문제 삼지 않고 여성에게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것은 명백한 여성혐오라 비판했다. 조씨는 떠나는 여성들을 잡을 생각 없이 욕할 뿐이라며 여성들이 다른 후보를 선택할 경우 이를 사표라 치부한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여성 유권자들은 광장에서 평등과 연대를 외쳤지만, 이재명 후보는 이를 ‘나중에’와 ‘사회적 합의’로 일축했다. 박씨는 이재명 후보 가 “남성 중심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유씨는 “광장에 청년 여성이 분명히 있었는데 왜 아직도 페미니즘 백래시가 발생하냐”고 탄식했다. 박씨는 “내란 종식만이 광장의 외침이 아니였음을 알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성은 언제나 선거에서 유동층으로 변화할 수 있음을 강조하며 “더 이상 여성이 뒤로 밀리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씨는 성평등 공약을 제로섬 게임처럼 여성에게만 이득이고 남성에게는 불이익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고 덧붙였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여성 공약을 임신, 출산, 육아로 한정했다. 박씨는 김문수 후보가 내세운 여성 공약에는 문제가 매우 많다며 여성을 재생산 도구로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는 김문수 후보의 공약에 “나도 여성인 데 나를 위한 공약은 없다”며 “여성을 동등한 인간이 아닌 출산하는 기계, 돌봄 노동자로만 바라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담에 참석한 이들은 국민의힘을 ‘내란 잔당’이라 칭하며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과오를 책임지지 않는 점을 비판했다. 조씨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계엄을 옹호한 국민의힘이 대선 후보를 배출한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씨는 국민의힘이 민주주의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며 “민주주의를 시민들이 회복시켜도 원점으로 돌아간다”며 탄식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했다. 이외 여성 공약은 없다. 유씨는 이준석 후보를 “정치하면 안 될 사람”이라며 언론이 이준석 후보에게 마이크를 과도하게 쥐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조씨는 “자신의 공약 없이 ‘없애겠다’로 일관”하는 이준석 후보의 ◆안티테제를 비판하며, “정치인으로서 자격이 있 는지 의문스럽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준석 후보는 혐오 정치의 일등 공신이라며 “청년을 대표하는 척 여성혐오만을 대변하고 있다”며 지적했다.

광장 목소리를 대변하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는 ‘지지율순’이라는 언론의 보도 관행으로 인해 지워지고 있다. 조씨는 “각자의 정체성으로 구성된 계층이 존재하는 사회이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정체성을 초월하는 연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후보”라는 점에서도 권영국 후보가 유의미하다고 평가했다. 조씨는 권영국 후보의 공약인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언급하며, ‘여성 연구 노동자’라는 자신의 다양한 정체성을 하나의 의제로 설명할 수 없기에 차별 해소를 위한 통합적인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박씨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한 회의적 의견을 내놓았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법안에 포함된 ‘성별정체성’ 조항은 여성을 위한 공간이나 정책이 ‘차별’로 간주될 여지를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개별 법안을 통해 각 의제에 집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민형씨가 여성·소수자 의제와 노동권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채의정 사진기자

광장에서 외쳤던 안전과 평등을 일상 속으로

대담에서 만난 이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여성을 비롯한 소수자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박씨는 ‘여성들은 언제나 광장에 있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페미사이드, 디지털 성폭력, 고용 성차별을 비롯해 자신이 주장하는 의제에 대해 항상 목소리를 내온 여성들이 있었음을 말하며, 여성의 표가 필요할 때만 보여주기식 공약을 내놓는 ‘반짝 여성주의’를 멈출 것을 촉구했다. 여성 정책은 정권 설립 및 유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여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방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씨는 “광장의 목소리가 다음 정권의 방향성이 돼야 한다”며 국민이 원했던 가치가 무엇인지를 귀담아듣고, 윤석열 정권의 반여성주의 행보를 답습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사회적 합의를 끌어내는 것이 정치의 능력이라고 덧붙였다. 조씨는 대학원생노동조합의 일원으로서 노동권을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연구 노동과 같이 보이지 않는 노동 또한 노동으로 인정되는 세상을 원한다. 조씨는 노동하며 사회를 유지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모인 합의체로서 국가가 존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티테제: 헤겔의 변증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정립에 대응하는 반대 개념이나 의견을 의미한다. 특정 사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하거나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태도를 지칭하는 데 사용한다.
◆페미사이드: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에 의해 벌어진 여성 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