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범죄 엄벌하라”, 미아역과 강남역을 메운 분노와 추모의 외침

미아역·강남역 여성혐오 범죄 규탄 목소리 이어져

2025-05-25     배진아 기자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이 발생한 2016년으로부터 9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성혐오에 기인한 폭력은 변함이 없다. 17일 미아역 1 번 출구에서는 ‘미아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규탄 시위’(시위)가, 같은 날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강남역 여성살해사건 9주기 추모 행동’(추모행동)이 열렸다.

‘미아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규탄 시위’에 참여한 한 참가자가 “우리는 왜 지하철의 이름을 마주할 때 우리 곁을 떠난 여성들을 함께 떠올려야만 하는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여성들은 여성혐오 폭력의 피해자들을 추모하고 국가와 경찰· 사법부에 여성혐오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다시 광장에 모였다. ‘미아역 마트 흉기 난동 사건’(미아역 사건)은 4월22일 서울 강북구 미아역 인근 마트에서 김성진(33)씨가 흉기를 휘둘러 60대 여성이 사망하고, 40대 여성이 중상을 입은 사건이다. 범행 후 자진 신고한 김씨가 태연히 담배 피우는 것을 경찰이 기다려 주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은 19일 김씨를 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여성혐오폭력 규탄 공동행동(공동행동)은 오후3시 미아역 1번 출구에서 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시위에는 추모의 의미를 담은 검은 옷과 마스크를 착용한 약 800명의 참여자가 자리해 피해자를 기렸다. 비가 오는 궂은 날씨였지만, 우비를 입고 우산을 든 이들은 “여성혐오 여성폭력, 여자라서 죽었다”, “젠더갈등 아니다, 여성혐오 인정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공동행동은 9년간 발생한 여성혐오 살인사건을 차례로 언급했다. 이들은 가해자의 이름을 담아 사건을 명명했다. △2016년 김성민 강남역 살인사건 △2018년 박창용 거제 살인 사건 △2020년 인제 등산객 살인사건 △2023년 최윤종 신림 등산로 살인사건 △2024년 박대성 순천 살인사건 △2024년 경남 사천 성탄절 살인사건 △2025년 이지현 충남 서천 산책길 살인사건 △2025년 김성진 미아역 마트 흉기 난동 사건이다. 참여자들은 8건의 사건에서 발생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여성혐오 범죄 희생자들을 기억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공동행동은 미아역에서 시작해 미아역 사건을 담당한 강북경찰서가 있는 수유역까지 행진했다. 행진이 끝나고 공동행동은 미아역 사건을 묻지마 범죄로 단정 지으며 수사를 종결한 강북경찰서를 규탄하는 의미를 담아 강북경찰서 앞에 국화꽃을 헌화하기도 했다.

미아역 1번출구 도로에서 이어진 ‘미아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규탄시위’. 약 800명의 참여자들이 ‘여자 골라 죽인놈 제대로 수사하라’, ‘여성혐오범죄 엄벌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공동행동은 “미아역 마트 흉기 난동 사건을 비롯한 일련의 여성학살에 대해 정확한 명명과 가중처벌을 요구하고, 여성폭력을 묵인해온 국가의 책임을 규탄하기 위해 시위를 조직 했다”고 밝혔다. “여성만을 골라 살해한 범죄임에도 여성혐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가해 행위를 개인의 일탈로 규정하고 구조 적인 폭력을 감추려는 시도”라며 규탄했다. 이들은 “거리, 직장, 지하철역, 언제 어디서 어 떤 남성에게 폭력을 당할지 모르는 현실 속 여성의 일상은 언제나 비상 상황이었다”며, 정치는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구조적 학살 상황을 직면하고,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법안 마련과 시행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17일 미아역 1번출구 도로에서 열린 ‘미아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규탄시위’에는 약 800명이 참여했다. 인파 속 한 참가자가 “묻지마 아니고 여성테러범죄”라고 적힌 피켓을 높이 들고 있다. 진유경 사진기자

이날 시위에는 래디컬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우리대학 중앙동아리 래디(RAD-E)가 연 대 발언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래디는 “여성혐오 범죄 기반에는 여성혐오 정서를 공유하고 확산시키는 남초 커뮤니티가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에게 무시당했다는 왜곡된 인식이 물리적 폭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며, 더 이상 남초 커뮤니티의 폐단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오후6시 강남역 10번 출구 앞에서는 젠더폭력해결 페미니스트 연대를 비롯한 95개 여성시민단체가 주최한 추모행동도 진행됐다.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은 2016년 5월17일 강남역 인근 주점 공용 화장실에서 한 여성이 일면식 없는 남성에게 살해당한 사건으로, ‘페미니즘 리부트’를 촉발한 실마리이기도 하다. 추모행동은 “페미니스트의 힘으로 여성폭력 끝장내자”, “여성폭력 정치가 책임져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정치권의 노력을 촉구했다. 참가자들은 ‘여성폭력 STOP’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다이인(Die-in)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

서울여성회와 함께 추모행동을 주관한 서울여성회 페미니스트 대학생 연합동아리 운영위원 강나연(여성학 전공 석사과정)씨는 “여성혐오 살인사건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와 함께 강남역 살인사건을 계기로 페미니스트가 된 이들은 계속해서 싸우고 연대하겠다는 목표를 가진다”고 말했다. 강씨는 “여성혐오 폭력 예방 및 지원 체계 구축과 함께 법과 제도 개정, 예산배정 등의 모든 문제를 통합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추진체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이인(Die-in): 여러 사람이 공공장소에서 죽은 듯이 드러눕는 시위 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