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사이] 친일과 반일 이전에 민주주의
“그 사람, 일본에 잘해줬잖아.”(あの人、日本に優しかったよね。)
지난해 12월3일 한밤중 내란 이후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11일간, 광장이 아니라 일본에 있다는 불편한 마음을 안고 최대한 주변에 한국 소식을 알리려 했다. 설명을 처음부터 차분하게 들어주던 친구도 있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을 ‘일본에 우호적인 사람’으로 평가하던 경우가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당할 수 있다고 얘기하면 앞으로의 한일관계가 악화될까 걱정하기도 했다.
의아했다. 나는 대한민국 헌법 질서를 뒤흔들려 한 사건을 얘기했는데, 열에 일곱은 ‘한일관계’부터 물었다. 내 정치적 의사를 캐묻기보다는, 오히려 무심하고 일상적인 어투에 괴리를 느꼈다. 그나마 한국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한국의 상황을 묻거나, 윤석열의 빠른 파면을 함께 응원해 줬다. 물론 일본 국민의 시선에서 한국을 본다면 한일관계가 중요하겠지만, 이 사건은 민주주의라는 가치에서 바라봐야 할 일이 아닌가.
답은 미디어에 있었다. 비상계엄 다음날에 나온 기사도, 탄핵 선고 이후에 나온 기사도 한일관계에 무게를 두고 썼다. 일본 4대 전국일간지 중 유일하게 진보 성향이라 평가받는 아사히 신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의 헌법재판소에서 4일, 파면을 선고받고 실직한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관계의 개선을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사의 리드부터 한일관계에 초점을 뒀다. 이는 윤석열의 헌법 위반 맥락을 모두 뒤로하고 윤석열의 친일 외교를 전면에 내세운 일본 미디어의 ‘의도적 선택’인 셈이다.
유튜브에서는 더 격한 표현이 난무했다. 탄핵 선고가 나온 지 30분쯤 뒤, 한국에서 교환학생 중인 리쓰메이칸 학생으로부터 걱정 담긴 연락이 왔다. “일본에서 유명한 한국인 유튜버들은 윤석열이 탄핵당하면 한국이 반일 국가가 된다고 해요. 그걸 보는 일본인들은 유튜버의 말만 믿고 댓글을 남기기도 하고요. 저는 이게 반일·친일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언니는 어떻게 생각해요?” 정치적으로 엄해지는 것뿐 아니라, 한국 아이돌이 방일 공연을 하는 것도 어려워질 거라는 소문까지 도는데, 이게 진짜냐고.
“법률이 죽은 나라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선고라니”, “윤 대통령이 지면 중국이나 북한같은 공산주의 국가로 된다”, “좌파가 한국이라는 나라를 없애려 한다”라는 자극적이고 공포심을 유발하는 표현들. 심지어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두고는 “좌파 재판관 따위”라며 비하도 서슴지 않는다. 국민의 3분의 2는 윤석열을 지지한다느니, 윤석열 탄핵 선고가 늦어진 게 야당이 미뤄서라느니 사실이 아닌 내용까지. 이게 한국 미디어가 보도하지 않는 ‘진실’이라며 일본인 구독자를 선동하고 있었다. 내란 사태와 윤석열 대통령에 관해 제한적으로 보도하는 일본 미디어 환경에서, 이런 유튜브 채널을 접하면 그대로 믿게 될 테다.
비상계엄 이후 탄핵까지, 광장에 나선 이들 중 ‘반일’을 전면에 내세운 사람은 없었다.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 장애인, 농민, 노동자 등 윤석열 정권으로 핍박받은 이들이 권리를 되찾는 것. 헌법 질서를 흔드는 불법 행위를 연대의 목소리로 저지하려는 것. 지도자가 무너뜨린 민주주의를 시민이 다시 세우는 것. 내가 멀리서 본 광장은 이런 모습이었다. 가장 가까이에서 참여한 이들은 더 확실하게 느꼈을 거다.
한일관계의 긴장을 부추기는 얘기들만 떠돈 것은 아니었다. 일본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SNS인 X(구 트위터)에서는, 광장에 응원봉을 들고나왔다는 게 화제가 됐다. 이에 어떤 반응이었는지 물어보니, “한국의 젊은이들은 정치에 관심이 많구나” 정도의 인식은 퍼졌었다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젊은이들이 정치적 움직임에 참여하게 됐는지 물어오는 이도 있었다. 그럴 때 나는, 우리 세대가 젊은이들을 떠나보낸 사건을 설명하며 “더 이상 우리를 잃고 싶지 않아서가 아닐까”라고 답했다.
최근에도 대통령 선거로 일본에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TBS 테레비 5월12일 뉴스에서는 이재명을 두고 “일본에 엄격하지만, 여론조사에서는 톱을 독주”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반일감정이 지지율에 영향을 줬다고 읽힐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을 친일 프레임으로 보도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 정치계와 미디어가 한국 지도자의 대일 외교 성향에 관심을 두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국가를 막론하고, 일본에 협력적이라고 해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행위를 비판하지 않으면 저널리즘의 책무를 저버리는 일이다. 친일이냐 반일이냐보다, 민주주의가 보도의 앞자리에 올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