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 100주년 인문학 콘서트, 다섯 개 키워드로 풀어내다
제가 그걸 어떻게 알겠어요.
강연을 들은 학생이 ‘이번 학기 교수님 수업을 듣고 있는데, 앞으로 어떤 마음으로 남은 수업을 들어야 하느냐’고 질문하자, 최종철 교수(미술사학과)는 이렇게 답했다. 청중의 큰 웃음을 끌어낸 최 교수의 답변은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은 인문학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16일 오후1시, 학관 251호에서 ‘정답이 없는 학문’이라 불리는 인문학에 각자만의 의미와 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인문학 콘서트(콘서트)가 열렸다. 우리대학 문과 설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이 콘서트는 인문과학대학(인문대)에서 주관하고 인문대 교수 5인이 발표를 맡았다.
콘서트는 이향숙 총장의 축사와 정혜중 인문대 학장의 개회사로 시작했다. 정 학장은 기존에는 교수끼리 학술제를 진행했지만, “학생들과 더 깊이 호흡하고 인문학의 현재성을 강조하고자 강연 형식의 행사를 준비했다”며 콘서트의 취지를 설명했다.
첫 번째 연사자 정끝별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시는 왜 아름다운가?”를 주제로 발표했다. 38년 차 시인이기도 한 정 교수는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있는 시대에, 시의 아름다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시가 아름다운 이유는 직관을 활용해 모국어의 가능성을 최대로 발휘하고, 여백으로 의미를 채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실용적이지 않은 성격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며 진실과 윤리의 실천을 지향하기 때문이라고도 덧붙였다. 김도훈 교수(불어불문학과)는 “전쟁의 기억 또는 기억의 전쟁 – 콜테스(Koltès)의 ‘사막으로의 귀환’과 헤테로토피아(hétérotopie)”를 주제로 강연했다. 콜테스는 1948년생 프랑스 극작가로, ‘사막으로의 귀환’은 그의 작품 중 유일하게 프랑스를 배경으로 한 희곡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과거 억압과 폭력을 겪었던 집으로 돌아와 그간 침묵했던 기억 다시 대면한다. 이때 그에게 집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닌 서로 다른 기억·시간·권력의 흔적들이 충돌하는 장소로, 푸코가 말한 ‘헤테로토피아’라고 해석할 수 있다.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만 일상의 질서와는 다른 특별한 공간이다. 묘지, 병원, 거울 속 세계 등이 이에 해당한다. 관객들은 이 무대를 통해 지워졌던 역사와 진실을 다시 인식하게 된다. 김도훈 교수는 기억을 복원하고 회복하는 일이야말로 문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질의응답 이후 진행된 2부에서는 김선희 교수(철학과)가 “친밀한 타자와의 교제법 – 동양철학의 슬픈 운명을 이해하기 위한 시론”을 주제로 발표했다. 동양철학을 전공한 김선희 교수는 동양에도 철학이 있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며, 필요성과 가치에 대한 증명을 끊임없이 요구받는 동양철학의 주변적 지위를 문제 제기했다. 그는 철학의 표준으로 여겨지는 서양철학의 정의로는 동아시아의 지적 전통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김선희 교수는 철학의 근본적 토대가 언어와 그에 연동된 사유라면, 여전히 현대 한국인에게도 동아시아는 중요한 철학 자원이자 대상이라며 동양철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다음으로 최 교수는 “디지털 시대 회화의 변신”을 주제로, AI 이미지 기술이 회화 전통과 어떻게 맞물려 변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했다. 그는 최근 유행한 지브리 스타일 사진 변환을 예로 들며 AI가 만든 낭만적 이미지 속에는 여전히 인간의 기억과 미술 감각이 깃들어 있다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AI가 새로운 붓이 될 수 있지만, 무엇을 그릴지는 결국 인간의 몫”이라고 설명했다.
콘서트의 마지막은 박찬길 교수(영어영문학부)의 “낭만주의 시대의 대학론”이 장식했다. 박 교수는 대학이 돈 잘 버는 인재 양성에만 몰두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독일 베를린 훔볼트 대학(Humboldt University)을 설립한 훔볼트의 교육 이념이었던 빌둥(bildung)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빌둥은 인간의 모든 능력을 조화롭게 계발해 정체성 구축과 자기실현을 이루는 전인적 성장의 과정이다. 그는 빌둥의 이상을 가장 전형적으로 추구한 영국 시인 워즈워스(Wordsworth)를 소개했다. 워즈워스는 아름다운 시가 인간의 정신을 충만하고 도덕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박 교수는 “나는 도로와 다리를 만드는데 너는 무엇을 만드냐”고 물었던 공대 교수 동창에게, 그때는 제대로 답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나는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눈과 착한 마음을 만든다”고 대답하고 싶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콘서트에 참석한 학생들은 인문학의 폭넓은 가능성을 체감하는 시간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양수빈(물리·21)씨는 김도훈 교수의 강연을 인상 깊게 봤다며, 콜테스가 현대 극작가임에도 고전 기법과 현대 개념을 조화롭게 활용했던 점이 재밌다는 소감을 전했다. 신보경(철학·22)씨는 관심이 없었던 시와 연극 분야에도 흥미가 생겼다고 말했다. 신씨는 “인문학 전공을 하더라도 타 분야에 대한 정보를 얻기 쉽지 않은데, 이렇게 특강 형식으로 행사가 열려서 좋다”며 앞으로도 인문학 강연이 많이 열리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