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록탑] 존재했지만 부재했다

2025-05-18     변하영 사진부장

6월3일 조기 대선이 치뤄진다. 123일간의 투쟁 끝에 이뤄낸 민주주의의 결과다. 응원봉을 거리로 들고나와 광장을 꺼지지 않는 불빛으로 가득 채우고, 서로 연대하며 영하에 웃도는 날씨에도 거리를 지키며, 차별 없는 광장을 만든 중심에는 여성들이 있었다. 광장을 가득 채운 여성들의 목소리를 세상이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어내자 여성들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배경음처럼 사라진 지워졌다. 21대 대선은 18년 만에 여성 후보가 없는 대선이다. 설상가상으로 주요 대선 후보자들은 성별 지우기 전략을 사용하고 있다. 20대 대선 당시에는 여성 안심 대통령이 되겠다며 젠더폭력, 디지털 성범죄와 같은 여성 관련 공약을 내놓던 후보자의 21대 대선의 10대 공약에 여성을 위한 공약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한 후보자는 여성 국회의원을 향해 ‘미스 가락시장’이라고 칭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으며, 다른 후보자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K-집회를 주도하며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노력한 여성들에게 돌아온 결과는 정치적 장면에서의 철저한 소외였다. 현재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여성에 대한 접근은 여성의 권익을 보장해 주기 위함이 아닌, 여성 유권자 수를 소비하는 전략적인 수단이다. 여성들이 연대하여 보여준 힘과 투쟁으로 인한 혜택은 모두 받아들인 채, 여성들의 요구에 대해서는 묵묵부답으로 반응하고 있다. 광장에서의 여성들은 “존재”했지만, 투표용지에서 여성은 “부재”했다. 부끄럽지만, 이화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세상에서 지워지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화에 온 후 깨달았다.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내가 몰랐던 것이었음을. 이러한 무지 또한 큰 문제라는 것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며,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말하고 있지 않는 것이었음을. “억압은 단지 착취를 의미하지 않는다. 억압은 말할 수 없는 자리에 놓이는 것을 뜻한다.” 아이리스 마리온의 말처럼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는 여성을 바로 그 말할 수 없는 자리로 되돌리고 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들던 여성들은 기록되지 않았고, 정치의 설계도에는 이름조차 올라가지 않았다. 성평등 없는 민주주의는 반쪽짜리 민주주의다. 여성이라는 이름은 정책에서도, 연설에서도, 공약에서도 사라졌다. 보편주의 담론이라는 이름으로 불평등 자체를 비가시화하고 있으며, 성별 문제를 은폐시키고 있다. ‘갈등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명목하에 여성의 존재 자체가 지워지고 있는 것이다. 응원봉을 들고 광장을 가득 채운 여성들은 분명히 존재했다. 하지만 봄이 온 지금, 그 존재는 왜 다시 침묵으로 처리되고 있는가.